5년 공백 깬 낙태죄 개정 논의… 태아 생명과 여성 권리, 법으로 조율할 때

입력 2025-06-19 16:37 수정 2025-06-19 16:43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가 19일 서울 동작구 엠벨엘교회에서 ‘낙태죄 개정안과 입법을 위한 세미나’를 연 뒤 단체촬영을 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5년간 입법 공백 상태인 낙태죄에 대한 구체적 개정 방안이 제시됐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상임대표 이승구)는 19일 서울 동작구 엠벨엘교회에서 ‘낙태죄 개정안과 입법을 위한 세미나’를 열고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방안들을 공유했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지속된 법적 공백 상황에서, 발제자로 나선 연취현 변호사(법률사무소 와이 대표)는 “태아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 사이의 균형을 이룬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형법 개정, 모자보건법 개정, 신규 법률 제정 등 3가지 축으로 구성된 입법 정비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연취현 변호사. 신석현 포토그래퍼

연 변호사는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제269조(자기낙태죄)와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를 개정해 임신 주수에 따른 구분과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신 10주 이하 초기 낙태에 대해서는 일정 조건으로 비처벌 또는 처벌 완화하되, 10주를 초과한 낙태에 대해서는 명확한 처벌 규정을 두자는 것이다.

특히 그는 “현재 낙태를 강요당한 여성은 법적으로 보호받을 길이 없다”며 “단순한 비범죄화가 아니라 강요에 의한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방향으로 형법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 변호사는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가 낙태 허용 사유를 우생학적·유전적 기준에만 국한하고 있어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생학적 장애를 이유로 낙태를 허용하는 조항은 차별 요소가 크다”며 해당 조항 삭제를 제안했다. 대신 “태아에게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경우 등 보다 구체적이고 생명 윤리적으로 정당화 가능한 사유를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독립적인 ‘상담조건부 낙태법(가칭)’ 제정도 제안됐다. 이 법은 낙태 결정 전 의무적인 상담과 숙려 기간을 제도화하고, 정확한 정보 제공과 후회 방지 장치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낙태 시술에 반대하는 의료인의 시술 거부권 보장, 익명 출산 제도 도입 등도 포함된다.

연 변호사는 “낙태를 둘러싼 결정은 감정과 상황의 압박 속에서 쉽게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며 “국가가 상담과 정보 제공을 통해 여성이 낙태 외의 선택지를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원 전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신석현 포토그래퍼

이상원 전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는 고대 이방 사회와 초대교회 교부들의 낙태관을 역사적으로 분석하며, 낙태 문제에서 남성의 책임이 간과되는 현상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그는 “신학적·사회적으로 남성의 책임을 회피하고 여성에게만 떠맡기려는 사고 체계를 깰 필요가 있다”며 “낙태가 단순히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의 책임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발제자들은 최근 국제 사회의 변화도 주목할 만한 배경으로 제시했다. 2020년 미국 헝가리 폴란드 조지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34개국이 서명한 ‘여성건강과 가족강화 증진에 관한 제네바 합의선언’에서 “어떤 경우에도 낙태가 가족계획의 수단으로 옹호되어서는 안된다”고 명시한 점과 미국 연방대법원의 Dobbs 판결을 통한 낙태법 재검토 움직임 등이 그것이다.

연 변호사는 “국제적으로도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한국도 이러한 흐름을 참고해 균형잡힌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토론 시간에는 이명진 협회 공동대표가 좌장으로 나서고 이재욱 목사(행동하는프로라이프 공동대표)와 홍순철 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이 지정토론자로 참여해 발제 내용에 대한 심화된 논의를 이어갔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