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전국적으로 들썩이면서 가계대출 증가세가 뚜렷해지자 금융 당국이 은행권 부행장들을 소집했다. 은행권을 통한 주택담보대출 규제는 새로 집을 사려는 수요만 핀셋으로 짚어 억제할 수 있는 규제 수단으로 꼽힌다. 오늘 소집을 시작으로 과거 진보 정권에서 반복됐던 ‘대출 제한’이 시작될지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이날 오후 박충현 금융감독원 은행 담당 부원장보 주재로 각 시중은행의 여신 담당 부행장들을 불러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각 시중은행이 월·분기별 대출 공급 계획을 초과해 무분별하게 공급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무리한 영업에 나서지 말라고 경고하는 차원이다. 고객의 신용대출 등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생활안정자금용 주담대’로 대환시키는 꼼수를 쓰지는 않았는지, 보유 주택 처분 담보부 주담대는 잘 관리되고 있는지 등도 점검 대상이다.
금융 당국이 나선 것은 가계대출 잔액이 무섭게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시중은행의 지난 12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50조792억원이다. 지난달 말 748조812억원이었는데 7영업일 만에 2조원 가까이 급증했다. 이달 하루 평균 가계대출 증가액은 1665억원에 이른다. 금융권 전체로 봐도 월별 가계대출 증가액은 4월 5조3000억원, 5월 6조원으로 상승세다. 이 추세대로라면 이달에는 7조원을 넘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 당국은 점검 후에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가라앉지 않을 경우 추가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과거 집값 급등이 반복됐던 진보 정권에서는 대출 규제를 애용해왔다. 김대중 대통령 때인 2002년에는 지금도 쓰이는, 집값을 기준으로 대출금이 제한되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가 처음 도입됐다. 노무현정부에서는 2003년 60%였던 LTV 비율을 50%로 강화하고 2005년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만들었다. 문재인정부에서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LTV DTI 규제가 여러 차례 강해졌다. 또 현재 대출 규제의 핵심으로 꼽히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사실상 이때 제 모습을 갖췄다.
역대 대출 규제 중 효과성이 가장 컸던 것들은 대부분 문재인정부에서 탄생했다. 첫 번째로는 2017년 ‘8·2 대책’이 꼽힌다. 투기과열지구를 확대 적용하고 전국에 LTV DTI 40%를 일괄 적용했으며 다주택자의 신규 주담대 실행을 전면 금지했다. 이후로 서울 강남 3구 등 고가 아파트 거래가 급감했지만 수요가 9억원 이하 중저가 주택으로 이동하는 풍선 효과를 낳았다. 법인을 설립해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만으로 집을 사는 ‘갭 투자’ 열풍도 불었다. 이후 2020년 ‘6·17 대책’ ‘7·10 대책’을 통해 전세자금대출 보증을 제한하고 법인대출을 틀어막았다. 법인 대상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도 대응했다.
이재명정부에서도 과거 정부 대출 규제들의 효과성을 분석한 뒤 선별해 시행해나갈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집값 상승세를 막는 데 더 효과적인 것은 공급 확대라고 입을 모은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공급 확대다. 공급 확대라는 전제 없는 대출 규제는 풍선 효과만 낳을 것”이라면서 “경기권 외곽의 제3·4기 신도시가 아니라 서울 안에 뉴타운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새 아파트를 공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랩장은 “주택 구매 수요를 누그러뜨리는 데 서울에 질 좋은 새 아파트를 많이 공급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