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어느 가족 이야기

입력 2025-06-15 18:02

오누이의 부모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부모의 아들에 대한 교육열은 대단했다. 빚을 내서라도 과외를 시키고 학원을 보냈다. 도청 소재지 고등학교로 유학도 보냈다. 이런 부모의 노력 덕분인지 아들은 서울 명문사립대에 진학했다. 서울대에 진학하기를 고대했던 부모는 잠깐 실망하기도 했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학교육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했다.

아들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 딸은 여상에 진학했다. 부모가 아들에게 ‘올인’했기 때문에 딸에게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대학진학은 꿈도 꾸지 못해서 부모의 강권으로 어쩔 수 없이 여상에 진학한 것이다. 딸은 여상 졸업 후 지방대라도 진학하고 싶었으나, 부모의 반대가 완강해서 결국 대학에 가지 못하고 작은 건설회사의 경리직원으로 취업했다. 딸은 월급 대부분을 빚으로 고통받고 있던 부모님께 드려야 했다.

아들은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했다. 부모가 애타게 바랐던 법조인이 되기 위해 사법시험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번번이 1차에서 떨어져서 포기해야만 했다. 아들은 첫 월급을 타서 부모에게 내복을 선물했다. 그리고 몇 달에 한 번씩 소소하게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다.

몇 년 후, 아들은 만나는 사람이 있다면서 결혼하고 싶다고 알려왔다. 부모는 다시 빚을 내서 신혼집 아파트 전세 보증금을 보태줘야만 했고, 그 빚을 고스란히 딸의 월급으로 갚아야 했다. 빚이 대부분 갚아질 즈음 딸도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했다. 부모의 사정을 아는 딸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남자가 살던 투룸 전셋집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아들 부부는 이른 시일 내에 서울에서 집을 장만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모았다. 부모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명절이나 부모 생신 때 용돈 드린 것이 전부였다. 부모도 아들이 빨리 집을 장만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 사이 딸이 부모를 모셨다. 그 덕분에 아들은 결혼 5년 만에 서울 외곽 지역의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매매대금 중 절반은 은행 대출이었지만.

아들은 약 5년 단위로 갈아타기를 했다. 꼭 대통령 임기에 맞춰서 이사 가는 듯했다. 투자 대비 50% 정도의 이익을 남기고 팔아서 다시 은행 대출을 받아 상급지로 이사 가기를 반복했다. 어느 정권이나 아들의 부동산 투자를 배신하지 않았다. 정권이 들어서면 처음에는 부동산을 잡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곧 시들해지고, 오히려 서울 부동산 가격만 폭등시키곤 했다. 아들은 30년 만에 강남에 입성했다. 아들로서는 지난 정부가 고마울 뿐이다. 기존 정부의 헛발질로 인한 불로소득이 아니었다면, 아들 부부의 근로소득만으로 강남 입성은 언감생심이기 때문이다.

딸 부부도 열심히 일해서 결혼 10년 만에 가까스로 지방 소도시 아파트를 장만했다. 부모 모시고 아이들 키우느라 여윳돈을 모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도 그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아파트 가격은 별반 오르지 않았다. 오직 근로소득만으로 생활하는 딸 부부는 퇴직 후의 삶에 대한 걱정으로 한숨만 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평등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현상이기는 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개인의 노력 차이에서 발생하는 불평등보다는 불로소득에 기인하는 불평등이 훨씬 큰 게 사실이다. 결국은 정부가 그 불평등을 좁혀야 하지만, 지난 정부의 정책은 모조리 실패했고 불평등은 훨씬 깊고 넓어졌다. 이재명 정부는 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일단 지켜보는 수밖에.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