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속일 수 없었다.
부모님의 골프 유전자를 물려받은 ‘투어 2년차’ 이동은(20·SBI저축은행)이 42개 대회 출전 만에 감격의 생애 첫 승을 거뒀다. 그것도 최고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내셔널 타이틀 DB그룹 한국여자오픈(총상금 12억 원)에서 거둔 것이어서 기쁨은 배가 됐다.
이동은은 15일 충북 음성군 레인보우힐스CC(파72)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날 4라운드에서 보기 1개에 버디 4개를 묶어 3언더파 69타를 쳤다.
최종합계 13언더파 275타를 기록한 이동은은 올 신인상 포인트 1위를 달리고 있는 김시현(18·NH투자증권)의 추격을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프로 데뷔 이후 이 대회에서 생애 첫 승을 거둔 역대 12번째 선수다.
우승 상금 3억원을 보탠 이동은은 19위였던 상금 순위를 3위(4억9954만833원)로 단숨에 끌어 올렸다. 대상 포인트도 100점을 보태 13위에서 4위(221점)로 도약했다.
김시현과 공동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들어간 이동은은 12번 홀(파4)까지 버디 2개를 잡아 1타 차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13번 홀(파4)에서 1m 남짓 파퍼트를 놓쳐 노승희, 김시현에게 공동 선두자리를 내주며 쫓기는 신세가 됐다.
14번 홀(파4)에서 13m가량의 먼 거리 버디 퍼트를 성공시켜 다시 1타 차 단독 선두로 올라선 이동은은 15번 홀(파4)에서 레귤러 온그린에 실패하면서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세 번째샷을 홀 50cm에 붙여 파세이브에 성공시키면서 1타 차 리드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기세가 오른 이동은은 승부처인 16번 홀(파5)에서 버디를 추가해 사실상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주특기인 장타를 앞세워 투온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운 게 주효했다. 17번(파3)에서 파를 잡은 이동은은 18번 홀(파4)에서 두 번째샷을 그린에 올리지 못했으나 세 번째샷을 홀 60cm 붙여 파를 잡아 피를 말리는 접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드림투어 상금 순위 11위로 작년에 KLPGA투어에 데뷔한 이동은은 30개 대회에 출전해 8차례 ‘톱10’ 입상이 있었으나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번 우승으로 생애 단 한 번밖에 기회가 없는 신인상을 유현조(20·삼천리)에게 내준 한도 씻어냈다.
이동은은 아버지 이건희씨가 KPGA 정회원, 어머니 이선주씨는 KLPGA투어 준회원인 골프 가족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 2014년에 골프에 입문한 이동은은 아이러니하게도 딸의 고생을 염려해 극구 반대했던 아버지로부터 처음 골프를 배웠다. 2022년에는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가능성이 검증됐다.
이동은은 가공할만한 장타가 트레이드 마크다. 그는 작년에 방신실(20·KB금융그룹), 윤이나(22·솔레어)에 이어 장타 3위에 올랐다. 하지만 올해는 방신실을 밀어내고 장타 1위(260.1야드)를 달리고 있다.
이동은은 “우승할 거라고 생각 안 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대회보다 차분하게 대회를 치렀는데 그게 잘 풀린 것 같다”라며 “지난해 몇 차례 우승경쟁을 놓쳐서 아쉬움이 컸다. 성장하기 위한 발판이라고 생각하고, 참고 인내하면서 내가 할 것만 확실히 하자고 생각했는데, 너무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어 “레인보우힐스는 장타보다는 정확도를 요구하는 코스여서 포커스를 정확도에 뒀다. 퍼트 그립을 견고하게 잡고, 거리 맞추는 데 집중하다 보니 퍼트가 잘됐다”면서 “뒷바라지해준 부모님과 응원해준 팬들 덕분에 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게 됐다.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동은은 결정적 우승 원동력으로 14번 홀 버디 퍼트로 꼽았다. 그는 “보기 이후에 다운되는 상황이었는데, 들어갈 것 같다는 느낌이 있더라. 그런데 진짜 들어갈 줄은 몰랐다”고 웃으며 “올 시즌 목표가 1승이었는데 빨리했으니까 다승을 목표로 더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지난 8일 막을 내린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에서 연장전 끝에 준우승에 그친 ‘루키’ 김시현도 마지막까지 우승 경쟁을 펼쳤다. 아쉽게도 2주 연속 2위에 만족해야 했다.
2004년 송보배 이후 21년 만에 대회 2연패에 나선 작년 우승자 노승희(24·요진건설)는 14번 홀부터 마지막 18번 홀(파4)까지 5개 홀에서 4타를 잃는 바람에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4위로 대회를 마쳤다. 이날 2타를 줄인 황유민(22·롯데)이 3위(최종합계 8언더파 280타)에 입상했다.
시즌 1승을 거두고 있는 박현경(24·메디힐)은 마지막 날 4타를 줄여 7위(최종합계 3언더파 285타)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시즌 6번째 ‘톱10’에 입상한 박현경은 대상 포인트 40점을 보태 이번 대회에서 기권한 홍정민(23·CJ)을 3위로 밀어내고 2위(246점)로 올라섰다.
음성=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