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12일(현지시간) 가전제품에 사용되는 철강 파생제품에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국내 가전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수출 주력 품목 대부분이 관세 인상 대상에 포함돼 국내 기업들의 생산·유통 전략 재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미국 상무부는 이날 연방 관보를 통해 50% 관세 부과 대상인 철강 파생제품 명단을 밝혔다. 해당 명단에는 냉장고, 건조기, 세탁기, 식기세척기, 냉동고, 조리용 스토브, 레인지, 오븐 등이 새로 추가됐다. 단, 제품 전체 가격이 아닌 제품에 포함된 철강에 대해서만 함량과 가치를 따져 50%의 관세가 부과된다. 발효일은 동부시간 기준 오는 23일부터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미국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지만 현지 생산은 일부 제품에 한정된다. 대부분 주요 제품은 한국, 멕시코, 베트남 등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일부 부품과 철강 원자재도 멕시코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다. 가전제품의 특성상 철강 비중이 크기 때문에 관세가 현실화하면 제조원가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이 악화를 피하기 어렵다.
양사는 트럼프발 관세 폭격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거점 개편에 나설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가전 분야 관세 대응책에 대해 “프리미엄 제품 확대를 추진하고, 글로벌 제조 거점을 활용해 일부 물량의 생산지 이전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LG전자는 지역별 관세에 맞춰 유연하게 생산지 조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월 서울대 특별강연에서 “미국 생산 기지 건립은 마지막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며 “우선 생산지 변경이나 가격 인상 등 순차적인 시나리오를 따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관세 적용 시점이 임박한 만큼 실적 악화를 막기 위한 유일무이한 방법은 판가 인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간에 미국 현지에 새로 공장을 지어 생산 비중을 높이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서 “새 정부가 관세 인하를 위해 협상력을 발휘해주면 기업은 판가를 올려 대응하는 방법이 그나마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