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소녀, 영어교사를 꿈꾸다…‘희망의손’이 바꾼 인생

입력 2025-06-12 16:37 수정 2025-06-12 17:22
캄미 찬탈라양(왼쪽)이 최근 서울 강동구 한국구화학교 인근에서 이혜자 선교사의 수어 통역으로 자신의 꿈을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공부가 뭔지도 몰랐어요.”

라오스 비엔티안 인근 마을에서 태어난 청각장애 소녀 캄미 찬탈라(15)양은 집안일을 돕거나 TV를 보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런 그가 학교를 다니며 좋아하는 과목이 생기고 ‘영어교사’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찬탈라양의 변화 뒤에는 5년 이상 라오스 청각장애 아동을 위해 헌신해 온 이혜자(58)·오상철(61) 선교사 부부의 노력이 있었다.

지난 4일 서울 강동구 한국구화학교 인근에서 세 사람을 만났다. 찬탈라양 수어로 또박또박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고 이 선교사는 옆에서 통역으로 도왔다. 이들은 이날 한국의 농아교육 현장을 직접 둘러봤다. 찬탈라양은 “청각장애인도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며 “말을 배울 수 있다면 나중에 아이들을 구어로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라오스에서 찬탈라양처럼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농아인은 드물다. 국가가 운영하는 일부 특수학교를 제외하면 농아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라오스의 청각장애인에게 꿈을 꾸는 일은 사치에 가깝다. 농업이나 마사지업 등 제한적인 직업만 선택할 수 있는 현실이다. 라오스 교육체육부에 따르면 7만~8만 명으로 추정되는 청각장애인 가운데 정규 교육을 받은 이는 약 2000명, 비장애인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농아인은 1000여명에 불과하다.

학생과 교사들이 최근 라오스 농아인학교 '희망의손'에서 웃고 있다. 이 선교사 제공

이러한 라오스의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낀 이 선교사와 오 선교사는 청각장애 아동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교육과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학교를 설립했다. 이 선교사와 오 선교사는 2012년 총회세계선교회(GMS)의 파송을 받아 라오스에 입국했다.

처음에는 오지에서 학교 건축 사역을 시작했다. 어린이 사역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던 두 선교사는 라오스 국립대학인 동독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며 전문성을 쌓았다. 이 선교사는 “도시에는 일자리를 찾으러 지방에서 올라왔지만 거처할 공간이 없어 방황하는 아이들을 알게 됐다”며 “도시로 올라온 지방 아이들 중에는 청각장애 학생들도 있었다”고 했다.

이를 계기로 이 선교사 부부는 장애인센터를 설립했고 이후 3년간의 준비 끝에 장애인센터를 정식 학교로 인가받는 데 성공했다. 학교 이름은 ‘희망의손’이라고 지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인력이 충원되는 일도 있었다. 학교에서는 산수와 말하기, 듣기수업을 제공한다. 교사를 충원하기 위해서는 능숙하게 수어 능력을 갖춘 이가 필요했었다고 했다. 이 선교사는 “수어를 할 수 있는 교사를 찾던 중 과거 센터 학생이던 이들이 선생님으로 지원했다”며 “성인이 된 학생 중 두 사람이 자신들이 받은 도움을 후배이자 제자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한 것”이라고 했다.

이혜자·오상철 선교사 부부가 최근 희망의손 학생, 교사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이번 희망의손의 한국 방문도 이들을 마음과 재정으로 후원한 기독NGO 비에프월드(대표 현경만)가 있었다. 비에프월드는 이들이 한국에 있는 동안 체류비와 항공료를 지원했다. 이들을 지원해주는 여러 손길들이 있지만 희망의손은 학생들이 받기에 익숙하지 않도록 교육한다고 했다. 이런 차원에서 희망의손 학생들은 성탄절과 라오스의 구정이 되면 동네 주민을 초청해 식사를 제공한다. 이 선교사는 “학생들이 비장애인들과 섞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한다”며 “교육을 통해 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이들이 세상에 베푸는 삶을 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공산주의 국가인 라오스의 특성상 희망의손은 공식적으로 기독교 학교로는 인가받지 못했다. 그러나 희망의손 학생들은 매주 주일예배를 드리며 복음을 접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학생 중 13명이 세례를 받았다.

오는 9월 시작되는 학기가 끝나면 희망의손 학교의 첫 졸업생 5명이 탄생한다. 라오스 교육체육부가 학교의 수준을 판단하기 위해 실시하는 장학검사에서 희망의손 학교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선교사는 “라오스 내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하고 있지만 한국의 교육을 보면서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한국의 수업을 참관하며 희망의손 아이들도 구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고 웃었다.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