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떠난 고향 한국… 입양인 79명 제주서 뜻깊은 여행

입력 2025-06-12 14:15 수정 2025-06-13 08:18
11일 제주국제공항 환송식에서 제주를 찾았던 입양인과 가족들이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즐겁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제주도 제공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해외로 입양된 이들에게 제주 여행을 통해 모국을 느끼는 의미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참가자 가운데는 자신을 키워준 입양 부모나 자녀와 함께 제주를 찾아 가족과 모국의 풍경을 공유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 제주드림타워는 8일부터 11일까지 미국·덴마크·영국 등에 거주 중인 입양인과 그 가족 89명을 제주로 초청해 ‘제주와 함께 하는 마음의 고향 여행(Soul Home Journey with Jeju)’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12일 밝혔다.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가 방문지 섭외, 체험 프로그램 설계 등 현장 지원을 맡고, 제주드림타워가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참가자 전원에 숙박을 지원했다.


이번 행사에는 입양인 79명과 가족 10명 등 89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성산일출봉과 금능해수욕장, 돌문화공원, 해녀박물관 등 제주의 대표적인 자연·문화 유산을 탐방하고, 해녀 공연을 관람하며 제주의 생태와 문화를 깊이 있게 체험했다. 연동 누웨마루 거리에서 한국팀들의 거리 공연을 관람하고, 주변 상권을 탐방했다.

한국 음식도 다양하게 맛봤다. 일정에 동행한 제주관광공사 관계자는 “아무래도 스테이크가 익숙한 문화권에서 살아오신 분들이 많다 보니 갈치 등 생선 요리보다 흑돼지구이를 더 선호하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며 “그들의 바베큐 요리와 유사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고 했다.

마지막 날인 11일에는 제주국제공항에서 환송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현장을 찾아 참가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날 오 지사는 “이곳 제주는 77년전 국가폭력으로 깊은 상처를 겪었지만, 진실을 직면하고 화해와 상생의 길을 걸으며 국가배상이라는 역사적 정의를 실현했다”며 “제주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아픔과 회복, 새로운 희망이 공존하는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주가 마음의 고향으로 오래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제주를 찾은 입양인들은 1951년에서 1975년 사이 태어난 50~70대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해외 입양인의 모국 방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영리단체 ‘미앤코리아(Me&Korea)’를 통해 이번 일정 공고를 접하고 자비로 항공료를 부담해 제주로 왔다.

방문자 중 최고령인 74세 에스텔(한국이름 강현숙) 씨는 “천국에 온 듯한 여행이었다”며 “제주가 보여준 진심 어린 환대를 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입양 가족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전한 리사 잭슨(63) 씨는 “친절함과 따뜻함으로 가득 찬 여행이었다”면서 “제주 해녀의 용기와 제주의 역사,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다시 제주를 찾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모두 7·8세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됐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고서준 제주관광공사 관광기획팀 과장은 12일 “올해는 제주가 세계평화의 섬 지정 2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로 평화와 공존, 치유의 가치와 어울리는 사회공헌사업을 고민하다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6·25 참전용사, 소방관 등을 대상으로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의 제주 여행 소식은 자국 커뮤니티와 해외 입양인 네트워크를 통해 널리 전파될 예정이다. 제주도와 관광공사는 이번 행사를 통해 형성된 정서적 유대와 감동적 경험이 향후 제주를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