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중단위기 청소년, 후츠파를 만나다

입력 2025-06-12 10:35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직면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진로의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고, 대학 중심의 경쟁적 교육 시스템은 획일적인 기준을 강요하며,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청소년이 ‘탈락자’라는 낙인을 감당하게 된다. 특히 학업중단을 경험했거나 그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에게는 자존감의 손상, 사회적 고립, 미래에 대한 불신이 중첩되며 심리적·정서적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들은 단순히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만으로 회복될 수 없는, 보다 근본적인 ‘교육의 재정의’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스라엘 혁신문화와 교육철학을 조망한 ‘후츠파(Chutzpah)’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왜 이스라엘은 세계 인구의 0.2%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혁신국가로 부상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그 비밀이 바로 어린 시절부터 키워지는 문화적 태도, 곧 ‘후츠파 정신’에 있음을 밝혀낸다.

후츠파는 단순히 ‘건방짐’이나 ‘무례함’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 기존의 틀을 깨려는 사고방식,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시도정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주체성을 내포한 말이다. 이스라엘 사회는 유아기부터 청소년기, 군 복무와 사회 진출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정신을 체화시키는 다양한 시스템과 문화적 지지를 갖추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후츠파 정신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 속에서 길러질 수 있는 태도라는 점이다.

후츠파는 특히 세 가지 핵심 요소를 강조한다.

첫째, 어릴 때부터 질문하는 문화다. 이스라엘 아이들은 학교에서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더 중요하게 평가받는다.

둘째, 실패를 허용하는 사회 분위기다. 실패는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도전의 증거로 받아들여지며 이를 통해 학습하고 다시 일어서는 기회를 얻는다.

셋째, 비형식적 구조와 자율성의 강조다. 군대조차도 위계보다 팀워크와 창의성을 중시하며 이는 사회 전반에 창조적 사고를 뿌리내리게 한다.

이러한 후츠파 정신은 위탁형 대안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의 철학과 깊은 공명을 이룬다. 위탁형 대안학교는 학업중단위기에 처한 청소년들에게 단순히 ‘공부하는 법’을 다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다시 설계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회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후츠파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가치적 자원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질문하는 용기’는 학업을 중단하게 된 이유,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묻는 과정과 연결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는 기존 학교생활에서의 좌절을 넘어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도록 이끌고, ‘비형식적 구조’는 학생 중심의 자율적 교육과정, 프로젝트 기반 학습, 멘토링 중심 운영 방식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무엇보다 후츠파 정신은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심리적 회복과 자기 효능감 회복의 언어가 된다.

위탁형 대안학교가 마주한 과제는 단순한 학습 복귀가 아닌 삶의 재건과 정체성의 재구성이다. 후츠파를 통해 우리는 이스라엘의 교육에서 청소년이 어떻게 사회의 주체로 성장하며 실패를 성장의 동력으로 전환시키는지를 배우고, 그것을 위탁형 대안학교의 현실에 맞게 창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통찰을 얻게 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후츠파 정신을 단순히 개념으로 머무르게 하지 않고 구체적인 활동과 문화, 교육 방식 속에 녹여내는 실천이다. 이는 학업중단위기 청소년을 마주한 위탁형 대안학교의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함께하는 교육 공동체가 어떻게 ‘다르게’ 교육할 것인지, 청소년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교육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줄 것이다.

이제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답보다 가능성에 주목하며 실패를 새로운 출발로 전환할 수 있는 교육, 즉 후츠파적 교육혁신이 위탁형 대안학교의 또 하나의 이름이 될 시간이다.

김기환 소울브릿지학교 연구소장

정리=조승현 기자 cho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