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단속·시위 대책에 분주한 한인 사회…‘자바시장’은 단속 후폭풍

입력 2025-06-11 13:10 수정 2025-06-11 14:02
캐런 배스 LA 시장이 10일(현지시간) 한인 단체들이 주관한 화상 회의에 나와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단속 강화와 관련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한인 커뮤니티도 우려가 클 것이다. 이민 신분이 불안정한 사람들도 있고, 또 영주권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체류 중인 한인 이민자들도 있다. 이들은 매년 한 번 이민국 사무소에 출석해 보고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법을 따르고 지시받은 대로 행동한 사람들조차도 이민국에 출석했다가 체포될 수 있다.”

10일(현지시간) 화상으로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 단체들의 이민 단속 관련 대책 간담회에 캐런 배스 LA 시장이 직접 나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단속을 비판했다. 배스 시장은 “다른 시장들과 통화를 했는데 다들 ‘이 행정부가 우리에게도 저런 일을 할 것인가?’ 하고 걱정했다”며 “나는 지금 우리 도시가 실험 대상으로 쓰이고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 한인회 사무실에서 10일(현지시간) 한인 관련 단체 등이 참여해 이민 단속 강화 대응 화상 회의를 하고 있다.

LA한인회와 LA총영사관 등 관계 단체가 참여한 화상 회의는 한인사회가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단속 및 관련 시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한인은 최근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체포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한인이 가장 많은 LA 특성상 이민 단속이 강화하면 누구든지 체포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총영사관 관계자는 회의에서 “ICE에서 30일간 LA 지역 단속을 이어갈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며 “그럴 경우 코리아타운에서도 단속을 벌이고 그러면 시위대도 몰려올 수 있다. 또 그런 상황을 틈타서 약탈이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 동포 사회가 또 피해를 보지 않을까 우려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회의에 참석한 LA시 관계자들과 변호사들은 묵비권 행사 등 서류 미비 체류자의 권리 확보 방안 등을 안내했다. 특히 관련 단체들은 이민자의 헌법적 권리가 적힌 카드를 한인 사회에 나누어 주고 있는데 요청이 많아서 주문이 밀릴 정도라고 전했다.

코리아타운은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다운타운과 차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다. 아직은 ICE 단속과 반대 시위의 여진을 체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벌써 경제적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코리아타운에서 30년간 식당을 운영 중인 김용호 한인회 수석부회장은 “시위 내용이 보도되면서 손님이 줄어들어 저녁에 일찍 문을 닫았다”며 “식당과 세탁소 등 소규모 사업장들은 이민 단속이 계속되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식당에서 설거지하는 이들은 서류 미비자들이 60~70%를 차지한다”며 “단속이 계속되면 이 사람들은 더이상 출근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패션 디스트릭트 모습. 이민세관단속국의 단속 이후 한산한 모습이다.

한인들이 운영하는 의류업체가 밀집한 LA ‘패션 디스트릭트’는 벌써 경제적 여파를 체감하고 있다. 패션 디스트릭트는 일명 ‘자바 시장’으로 불리는 곳으로 지난 6일 ICE의 급습을 당한 업체가 자리 잡은 곳이다. 한인이 운영하는 이 업체는 자바 시장에서 손가락으로 꼽힐 만큼 대형의류업체였지만 ICE의 이민 불시 단속으로 직원 십여 명이 체포됐다. 이날도 정상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매장 안팎은 썰렁했다. 이웃 가게 직원은 “단속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손님도 없고,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다”며 “이민자들도 세금을 낸다. 세금을 내는 이들까지 단속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곳 사업주들은 대개 한인들이 많고, 직원은 멕시코 등 히스패닉이 다수다. 한 옷 가게 앞에서 만난 알렉스 유씨는 “어제(9일)도 이민세관단속국(ICE)에서 단속을 나온다는 소문이 좍 돌면서 여러 업체의 직원이 안 나오거나, 일하다 중간에 집으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유씨는 최근 ICE가 급습한 시장 분위기를 전하며 “관세 문제로도 경기가 좋지 않은데, 이민 단속까지 강화하면서 분위기가 더 나빠졌다”고 말했다. 이날 자바시장에서는 아예 문을 닫은 가게도 적지 않았다. 문을 연 가게들도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은 곳이 상당수였다.

LA 다운타운에서는 이날 밤까지 닷새째 산발적으로 이민 단속 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LA시 당국이 야간 소요 사태를 막기 위해 도심 일부 지역에 야간(오후 8시부터 오전 6시까지)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일부 시위대는 통금 이후에도 시위를 이어가다 경찰에 연행됐다.

시위는 LA를 넘어서서 샌프란시스코뿐 아니라 미 동부 뉴욕 등으로도 확산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 대응 기조를 재확인했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육군 기지인 포트 브래그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우리는 미국의 도시가 외국의 적에 의해 침공당하고 정복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글·사진 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