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연기에 오물까지… ‘뒷짐행정’에 훼손된 학교 환경

입력 2025-06-11 05:00
서울 한 고등학교 근처에서 사람들이 담배꽁초를 치우는 환경미화원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 인근 A고등학교 앞. 노점을 운영하는 남성이 ‘학교 주변 금연구역’이라고 써 있는 현수막 밑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학교 건너편에서는 중년 남성 3명이 청소 중인 환경미화원 쪽으로 담배꽁초를 던졌다. 학교를 나서던 B양은 “수업 중 외부에서 고성이 들리고 교내 복도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동묘시장 인근 학교 입구와 담장 곳곳에도 ‘학교 경계 30m 금연구역’ ‘담배꽁초 무단투기 금지’ 등 경고문이 붙어있지만 담장 주변은 쓰레기와 담배꽁초가 뒤엉켜 있었다.

학교 주변에서 흡연과 음주, 노상방뇨를 일삼는 어른들의 추태로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각종 경고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과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뒷짐 행정’이 맞물려 문제 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A고등학교에서 3년째 배움터지킴이(학교보안관)로 일하는 C씨는 “흡연이나 음주는 물론이고 야간에는 학교 담장에 대·소변을 보고 가는 사람도 있다”며 “등교 전 오전 7시쯤 직접 오물을 치운다”고 말했다. 다른 고등학교 교사 D씨는 “최근 술에 취해 학교 안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도 있었다. 적어도 학교 앞에는 시끄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인근 안국역 주변 초등학교 앞에도 교육환경보호구역과 금연구역을 안내하는 표지판 아래에 빈 담뱃갑과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배움터지킴이로 일하는 김모씨는 “주의를 줘도 몇 걸음 옮겨서 다시 피우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구청에서는 사진만으로는 단속이 어렵고 구청 관계자가 현장을 직접 목격해야 조치가 가능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등·하교 불편을 줄이기 위해 관할 구청과 경찰서에 계도 및 단속을 주기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학교 인근에 흡연 금지 등을 알리는 현수막도 설치했다. 그러나 학교 관계자가 직접 흡연자를 제지할 권한이 없고 사진 촬영은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어 적극적인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법상 학교 인근 구역은 흡연 및 음주를 못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강제력은 떨어진다. 지난해 8월 정부가 간접흡연으로부터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학교 주변 금연구역을 10m에서 30m로 확대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구청과 교육청은 단속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종로구 관계자는 “동묘 시장 인근의 학교 앞을 점거한 노점상이나 무단투기 등에 대해서는 강제 철거 조치를 하기도 하고 계도·단속도 하지만 인력 운용 등 행정력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밖 구역은 구청 소관이라 교육청 차원에서는 별도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글·사진=이찬희 기자 becom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