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하려 ‘위장이혼’까지… 국세청, 체납자 710명 전방위 조사

입력 2025-06-10 15:53 수정 2025-06-10 16:16

다주택자인 A씨는 수도권 소재 고가 아파트 한 채를 처분하면서 취득한 수익을 허위 신고했다. 양도소득세를 줄이기 위해 ‘꼼수’를 썼지만 이내 꼬리가 밟힌 것이다. 하지만 A씨는 수억원 규모의 양도세 고지서를 받자마자 또 다시 머리를 굴렸다. 배우자랑 협의 이혼을 하면서 보유 중인 아파트를 재산 분할 형식으로 부인에게 양도했다.

국세청 추적조사 결과 이는 압류를 피하기 위한 ‘위장결혼’으로 드러났다. A씨는 이혼 후에도 배우자와 동거하며 금융 자산을 사실상 공유했다. 국세청은 이를 고의적 체납 행위로 보고 A씨 배우자를 대상으로 자산을 A씨 몫으로 되돌리는 사해행위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증여받은 아파트는 처분금지가처분 조치를 했다. 양도세를 피해보려다가 되레 일만 키운 셈이 됐다.



가족 단위로 고의적 체납 행위에 가담하는 일은 부지기수다. 부동산 컨설팅 사업자인 B씨는 거짓세금계산서를 수시로 수취·발행하다 덜미를 잡혔다. 조사 결과 종합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등 체납액만 수십억원에 달한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마자 B씨는 부모와 자녀, 누나 등 가족 4명을 동원해 수익 빼돌리기에 나섰다. 각각 신규 계좌를 개설토록 한 뒤 자신의 컨설팅 소득을 이체했다. 가족들은 이 돈으로 10채의 상가를 취득했다.

국세청은 해당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B씨 일가족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금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가족 명의로 취득한 상가는 가압류 조치했다. 고의적 체납을 시도한 B씨는 체납처분면탈범으로, 일가족은 방조범으로 고발 조치까지 단행했다. 일가족이 다 범죄자가 된 셈이다.

국세청이 고의로 세금을 체납한 고액상습체납자 710명에 대해 대대적인 재산추적조사에 돌입했다. 10일 국세청에 따르면 이들의 체납액은 1조원 규모에 달한다. 지난해 고액상습체납자 징수액(2조8000억원)의 35.7% 정도 규모다.

유형은 크게 세 가지다. 상습 고액 도박을 하며 일정한 주소지를 두지 않고 호화생활을 누린 체납자가 362명으로 가장 많다. A씨 등 위장이혼으로 강제 징수 회피한 체납자나 B씨 등 차명계좌로 돈 빼돌린 체납자는 각각 224명, 124명으로 집계됐다.

체납자들의 가택과 사무실, 친인척 등을 탈탈 털 계획이다. 자산이 징수되지 않도록 현금화해 숨겨 둔 사례가 많은 탓이다. 만날 들고 다니는 등산가방에 수백돈 금뭉치(3억원 상당)를 넣고 다니거나, 아파트 발코니에 10만원권 수표 5억원어치를 쌓아 둔 사례가 적발된바 있다.


국세청은 향후 체납추적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일선 세무서 내 추적조사전담반 운영을 확대하고, AI·빅데이터를 활용해 자금 흐름을 면밀히 주시하기로 했다. 해외은닉재산 적발을 위한 국가 간 공조도 보다 활성화한다. 내부적으로는 최근 도입한 징수포상금 제도를 통해 국세청 직원들의 업무 유인을 높여 주기로 했다. 안덕수 징세법무국장은 “반칙 행위에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