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대] 화장실서 밥 먹는 승무원… 불평 아닌 경고다

입력 2025-06-10 07:00

“화장실에서 밥을 먹기도 합니다.”

저비용항공사(LCC) 객실 승무원의 이 고백은 개인의 불편을 넘어, LCC 구조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근 한 승무원은 “동료에게 피해를 줄까 봐 숙소 화장실 대신 로비 공용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화장실에서 식사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동료를 배려한 행동이었겠지만, 장시간 비행 후에도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눈치와 불편 속에서 감내해야 하는 근무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최근 에어부산을 중심으로 출범한 국내 LCC 최초의 캐빈 승무원 노조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이들은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고, 1인 1실 숙소 제공을 요구하고 있다.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라, 항공 안전과 직결된 ‘업무 수행의 전제 조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요구를 곧장 수용하긴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LCC는 말 그대로 ‘저비용’을 전제로 한 사업모델이다. 기체 활용률을 극대화하고, 인건비와 복리후생을 철저히 관리해 항공권 가격을 낮춰왔다. 대한항공 등 풀서비스캐리어(FSC)를 운영하는 대형 항공사와는 구조 자체가 다르다.

승무원 숙소비가 늘어날 경우, 그 부담은 결국 항공권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실제로 2인 1실을 1인 1실로 전환하면 숙박비는 단순히 두 배가 아니라, 연간 수십억 원에 달하는 고정비 증가로 이어진다. 이는 LCC가 유지해 온 재무 안정성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흔들 수 있다.

여기에 운항 환경의 차이도 있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은 유럽·미주 등 장거리 노선이 많고, 시차 변화도 크다. 반면 LCC는 동북·동남아 등 3~6시간 이내의 중·단거리 노선이 중심이다. 회항 주기, 체류 시간, 피로 누적 조건을 동일 기준으로 비교하긴 어렵다.

이런 차이를 인정한다면, 전면적인 1인 1실 도입보다는 조건부 적용이 현실적인 해법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내라도 1박 이상 체류하거나, 해외에서도 단순 ‘데일리’ 회항이 아닌 2일 이상 같은 숙소에 머무는 장기 체류 일정에는 1인 1실을 적용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업무 강도, 체류 환경, 누적 피로도 등을 기준으로 한 ‘차등 적용 원칙’의 도입 가능성에 대해 업계와 노조가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승무원들이 제기하는 숙소 문제를 단순히 ‘비용’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이 사안은 안전과 인권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승무원의 피로 누적은 곧 비행 안정성과 직결된다. 누적된 스트레스는 위기 상황에서의 판단력과 대응력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결국 소비자의 안전 문제로 이어진다. 비용을 아끼다 안전을 잃는다면, 그 누구도 이익을 보지 못한다.

더불어 이 사안은 단순한 복지를 넘어, 인권과 프라이버시의 영역이기도 하다. 낯선 동료와의 숙소 공유는 사생활 침해뿐 아니라, 성희롱이나 2차 피해 위험도 동반한다고 승무원들은 말한다.

우리가 믿고 탑승하는 비행기의 안전은 결국 승무원이 책임진다. 항공기의 안전은 수많은 시스템 위에 있지만, 그 출발점은 언제나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편히 쉴 공간은, 과연 보장되고 있는가.

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