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李재판 연기에 “헌정질서 파괴…대법 판단받아야”

입력 2025-06-09 16:11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9일 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 기일을 연기한 데 대해 “법 앞에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며 한목소리로 비판을 쏟아냈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헌법과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심각한 현실이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 사법부가 권력의 입김 앞에 흔들리는 정의의 저울이 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위원장은 “서울고법은 지난 15일 첫 공판을 열겠다고 발표했지만 이 대통령 측은 선거운동 기간을 공평히 보장해 달라며 기일 연기를 요청했고 법원은 그대로 수용했다”며 “이번에 또 (기일을) 미뤘으니 법원 스스로 통치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서울고법의 판단은 한마디로 사법의 유예다. 권력에 순응한 개별 재판부의 결정”이라며 “헌법 84조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엇갈리는 만큼 최종심인 대법원에 최종 결론을 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을 향해서는 “이쯤 되면 사법부를 헌법이 부여한 독립기관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하명기관쯤으로 여기는 듯하다”며 “법 앞에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헌법정신이 무너지고 있다. 죄 있는 권력자는 법망을 피해도 괜찮다는 거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침묵하지 않겠다”며 “헌법 질서를 지키기 위한 입법적·정치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내대표직 사퇴를 선언한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성동 원내대표도 이날 의원총회에서 “헌법 84조는 새로운 재판을 위한 대통령 기소가 불가능하다는 뜻이지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건 초등학생도 알 수 있다”면서 “권력의 바람 앞에 미리 알아서 누워버린 서울고법 판사의 판단은 두고두고 사법부의 흑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아울러 “검찰은 항고를 통해 헌법 84조에 대한 해석을 대법원에 요청할 것을 촉구한다”며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고등법원의 부당한 해석을 바로잡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울 것”이라고 했다.

권 원내대표는 “이재명정부의 출범 첫 1주는 통합도 민생도 아닌 오로지 방탄 독재의 길만 모색하는 모습”이라며 “황금 같은 허니문 기간의 힘을 본인의 법적 리스크 해소에 소진하는 이재명정부의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죄가 없다면 당당하게 재판에 임하기를 바란다”며 “본인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억지와 무리수를 쓰면 쓸수록 권력의 종말은 급속히 가까워진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왼쪽 사진)와 나경원 의원. 뉴시스
한동훈 전 대표도 페이스북에서 “헌법 84조는 대통령 임기 시작 전 이미 피고인 신분에서 진행 중이던 형사재판을 중지하라는 조항이 아니다”며 “헌법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법원 독립을 근본적으로 해치는 잘못된 결정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오늘 결정은 대한민국 사법부 역사에 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판사 출신인 나경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법원이 드디어 이재명 대통령에 무릎 꿇었다. 오늘의 사법부 태도는 대한민국 헌법의 후퇴선언”이라며 “대한민국 헌정사에 ‘사법의 정치 예속’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이제 민주당의 재판정지법도 필요 없게 됐다. 유권무죄, 무권유죄 시대가 드디어 열렸다”고 했다.

장동혁 의원은 페이스북에 “2025년 6월 9일은 사법부가 정치권력에 굴복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입법부에 이어 행정부를 장악하고, 나아가 사법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사법부까지 굴복시킨 이재명정부에서 진짜 정의는 죽었다. 앞으로 펼쳐질 5년은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이재권)는 오는 18일로 예정됐던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파기환송심 사건의 1차 공판기일을 ‘추후지정’으로 변경했다. 기일 추후지정(추정)은 기일을 변경, 연기 또는 속행하면서 다음 기일을 지정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고법은 이번 결정이 “헌법 84조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규정하고 있다. 다만 ‘소추’의 개념에 현재 진행 중인 형사재판이 포함되는지를 두고 명확한 규정이 없어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져 왔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