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제주도 조천읍 함덕리 ‘함덕 그린수소 충전소’에선 운행을 마친 312 버스 두 대가 충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장에 수소 탱크를 탑재하고 있어 차량 높이가 높을 뿐 일반 버스와 다르지 않은 외관이었다. 먼저 온 버스에 충전기를 꽂고 수소를 공급하자 케이블에 서서히 하얀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영하 40도의 수소가 공급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린수소 버스 한 대를 충전하는 시간은 10분 남짓이다. 이렇게 짧게 충전해도 최대 600㎞를 거뜬히 달린다.
그린수소는 풍력과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만든 수소다. 제주는 2023년 5월 도내에 처음으로 함덕 충전소를 완공했고, 지난해 11월부터 국내 최초로 그린수소를 일반 수소차 등에 상업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2년 전 9대였던 수소버스는 현재 19대로 늘었다. 버스 외에도 월 평균 620여대 차량에 5.5t 정도의 그린수소를 충전 중이다. 제주는 2030년까지 수소충전소를 10곳으로 늘리고 이동형 충전소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수소차는 전기차와 비교해 충전시간이 훨씬 짧지만 주행거리는 더 길다. 겨울에 배터리 소모가 빠른 전기차와 달리 계절 변화에 따른 성능 차이도 없다. 이런 장점에도 여전히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함덕 충전소도 추진 과정에서 주민 설득에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고윤성 제주도청 미래성장과장은 “주민들과 함께 현장을 둘러보고 기회가 될 때마다 주민들을 만나 설명했다”며 “이제는 주민들이 먼저 그린수소 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물어오는 등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린수소 충전소에서 일하는 주민 정승락씨는 “처음에는 주민들도 수소 폭탄부터 떠올리며 걱정을 많이 했다”며 “저도 여기서 5분 거리에 산다. ‘제 집도 여기 있고, 저희 아이들 학교도 바로 앞에 있는데 제가 안전을 더 철저히 관리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하곤 했다”고 전했다.
제주의 사례가 새삼스럽게 주목받는 건 새 정부가 ‘재생에너지 중심 사회’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10년 뒤인 2035년에 탄소중립을 목표로 세우고 있는 제주도는 지난해 기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19.96%를 기록했다. 설비 비중으로만 따지면 태양광과 풍력의 비중이 50%를 넘는다.
지난 4월 14일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4시간 동안 ‘RE100’을 달성했다. RE100이란 재생에너지로 전력의 100%를 충당한다는 의미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국제 사회의 캠페인이다. 제주도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현황은 홈페이지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지난 4~5일 낮에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60%를 넘어섰다.
제주는 날씨에 따라 에너지 생산이 출렁이는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그린수소에 주력하고 있다. 풍력과 태양광의 잉여 전력을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면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동시에 수소를 필요할 때마다 이용할 수 있다.
앞으로 수소트램 등 그린수소 에너지 생태계를 확장해 2035년에는 그린수소를 연간 6만t이상 생산하고,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 만으로 전력 수요를 충당하는 ‘탄소중립 섬’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제주도는 규모의 경제가 형성되면 현재 ㎏당 1만5000원 수준의 그린수소 가격도 차츰 낮아질 거로 기대하고 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는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는 시스템의 출발점이 그린수소였다”며 “그린수요에 기반한 기저전원(전력 수요가 최소일 때도 항상 가동되는 발전소)으로 완벽하게 전환하는 새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