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선교·가정사역 통해 말라위 땅에 ‘하나님 나라’ 전한다

입력 2025-06-05 17:07 수정 2025-06-05 17:27
강지헌·주수경 말라위 선교사가 지난 4월 아프리카 말라위 구물리라 치소모아동센터 앞에서 센터 아이들과 함께 머리 위로 하트 모양을 하며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치과의사로서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의료선교를 펼치는 강지헌(65) 선교사가 ‘에파타덴탈클리닉’(에바다치과진료소)이라고 적힌 갈색 벽돌의 단층 건물 문을 열어젖히자 주변을 거닐 던 아프리카 난민들이 하나둘씩 관심을 보이며 모여들었다.

16.5㎡(5평) 남짓한 진료소 내부에는 최신식 치과 치료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20대 아프리카 청년 두 명이 진료소를 찾은 한 중년 여성의 치아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진찰했다. 강 선교사는 그들 옆에 서서 틈틈이 조언을 건넸다.

지난 4월 말 강 선교사를 만난 이곳은 말라위 수도 릴롱궤 인근의 잘레카(Dzaleka)난민캠프다. 캠프에는 내전 등을 피해 콩고민주공화국, 부룬디, 르완다 등에서 온 5만2000여 명의 난민과 망명 신청자가 산다. 강 선교사는 주기적으로 이곳을 찾아 무료 진료해왔다. 앞서 진찰하던 청년들은 강 선교사의 제자로 말라위대학교 보건대학 치의과 학부생인 이삭 루크 줄리오(25)씨와 노엘 카수페(24)씨이다.

강 선교사는 “20년 가까이 우크라이나와 몽골에서 현지인 제자들을 가르쳐왔는데, 어느 날 아프리카는 우크라이나나 몽골과 달리 의료 공급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말을 듣게 됐다”며 “교육도 중요하지만, 공급이 없는 곳에서 하나의 공급원이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이곳에 온 게 벌써 10년이 됐다”며 웃었다.

140년 전 한국에 뿌려진 선교 씨앗, 열매 맺어 아프리카로…

강지헌(왼쪽) 선교사가 난민캠프 내에 마련된 임시 치과 진료소에서 제자들과 함께 진료를 보고 있다. 아래 사진은 강 선교사가 진료팀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

19세기 말 우리나라에서 의료선교를 펼친 미국인 의사 로제타 홀(1865~1951) 선교사의 헌신은 박에스더(1876~1910)라는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를 길러내는 자양분이 됐다.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 땅에 뿌려진 선교의 씨앗은 140년이 흐른 지금, 강 선교사 같은 열매로 맺혔다. 더 나아가 이역만리의 말라위에 또 다른 씨앗으로 재탄생하고 있었다.

말라위는 ‘아프리카의 따뜻한 심장’이라고 불린다. 여느 아프리카와 달리 내전이 거의 없었다. 이는 기독교인 비율이 80%에 달하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정부급 회의뿐 아니라 지방 촌장 간 회의 때조차 기도로 시작하고 마칠 정도다. 그만큼 말라위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은 삶 전반에 깔려 있다. 하지만 1964년 영국에서 독립한 말라위는 마땅한 부존자원 없이 오로지 농업에 의존하고 있어 경제여건이 매우 열악하다. 아내인 주수경(65) 선교사와 함께 2015년 말라위로 온 강 선교사가 말라위의 다음세대를 길러내는 사역에 집중한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치소모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며칠 뒤 강 선교사 부부와 함께 릴롱궤 인근 구물리라 지역에서 이들이 운영 중인 치소모아동센터를 찾았다. 붉은색 흙벽에 양철지붕을 한 약 99.2㎡(30평) 남짓의 교실에 100여 명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교실은 과거 한국의 열악한 시골 학교 풍경을 연상케 했다.

센터 이름의 치소모는 ‘은혜’라는 의미이다. 해외 선교사들의 선진교육이 이뤄졌던 과거 한국처럼 이곳에서도 말라위의 다음세대가 길러지고 있었다. 말라위는 우리나라 중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8학년까지 의무교육이다. 하지만 4학년 진학을 앞두고 치러지는 시험에 많은 학생이 탈락한다. 이때 가정 형편 등의 이유로 대다수가 학업을 중도 포기한다. 강 선교사 부부는 이에 아이들이 적어도 8학년까지는 마칠 수 있도록 돕고자 2017년 이 사역을 시작했다. 2021년 서울 행복한우리교회(윤영지 목사)의 후원을 받아 지금의 건물을 지었다. 현재 세 명의 현지인 교사가 60여 아이들의 학업을 돕는다.

마달리소 치무카(37)씨는 이 센터에서 4년째 봉사 중이다. 인근 공립초등학교 교사이기도 한 그는 “아이들을 원래 좋아했는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이곳에서 봉사하게 됐다”며 “예수의 제자를 만드는 일에 일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강 선교사 부부의 헌신은 아이들에게 용기를 준다”며 “아이들이 영적으로 잘 성장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의 성공 사례가 되도록 도우려 한다”고 덧붙였다.

센터장 존 움쿨레사(42) 목사도 “센터가 운영 중인 ‘제자화(신앙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하나님께로 나오고, 아이들 마음에 하나님이 내재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려 한다”며 “지역사회와 국가를 위해 헌신할 아이들을 길러내는 이 사역을 위해 한국교회도 많이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케티 살라니야마(12·여)양은 칠 남매 중 넷째다. 독서를 좋아한다는 그녀는 “최근 성경 속 모세 이야기를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며 “모세처럼 사람들을 독려하고 이끄는 리더가 되고 싶다”고 수줍게 웃었다. 케티는 이어 “나중에 커서 강 선교사님처럼 의사가 되고 싶다”며 “한국에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강 선교사는 “오케이(알았다)! 열심히 공부하면 꼭 데려가겠노라”며 크게 웃었다.

현지인 자립 이끌어 지속가능하도록
강 선교사와 주 선교사가 치소모아동센터 한쪽에 마련된 도서관에서 교사와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

강 선교사 부부는 현재 기술 교육의 하나로 봉제 수업을 준비 중이다. 미국의 한 독지가로부터 재봉틀 15대를 지원받았고, 교육을 맡아줄 현지인 전문 재봉사도 섭외했다. 강 선교사는 “변변찮은 생리대조차 없는 여자아이들을 위한 생리대 제작 등을 교육하려 한다”며 “납품까지 이어져 조그만 수익이라도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이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교육은 곧 자립으로 이어져 ‘지속가능성’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 선교사는 강조했다. 그는 “선교 철학 중 하나가 ‘선교사보다 현지인이 더 잘한다’이다”며 “현지인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지, 내가 일일이 다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앞서 난민캠프에서 만난 줄리오씨는 열일곱 살 무렵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보여달라고 기도하며 의사를 꿈꾸게 됐다. 그는 “강 선교사님은 늘 ‘네가 하는 일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해주시며, 꿈을 위한 노력뿐 아니라 환자와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의 중요성도 가르쳐 주셨다”고 말했다. 훗날 치과의사로서 받은 소명을 펼쳐나가는 모습을 자신보다 어린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우크라, 몽골 거쳐 말라위까지….
강지헌·주수경 선교사는
“현지 치대생 교육 등 다음세대 양성에 힘쓸 것”
“‘어머니학교’ 통해 어머니상·여성상 회복되고, 가정 바로서도록”
강 선교사와 주 선교사가 협력 중인 친사포 지역의 한 현지 교회 담임 목사와 함께 한 모습.

강지헌(65) 선교사와 아내 주수경(65) 선교사는 1994년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갖게 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우크라이나(1996~2000)와 몽골(2001~2014)을 거쳐 2015년부터 지금까지 말라위에 이르기까지 의료 선교와 여성 성경공부 모임, 가정·빈곤 아동 지원 사역 등을 펼쳐왔다.

두 부부 선교사의 모토 중 하나는 ‘Stay flexible’(스테이 플렉시블·늘 유연하게)이다. 강 선교사는 “가능하면 나의 이해를 내려놓고 선교지 내부자들인 현지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현지를 존중하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는 이들의 선교 방향이 온정주의적 시각이나 수직관계로 현지인과 관계 맺는 데 있기 보다는 현지인과의 협력과 상호 존중에 더 초점을 맞추는 데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인 이들의 사역은 전문성을 활용해 일터에서 하나님께 받은 소명을 감당하는 ‘BAM(Business As Mission·선교로서의 직업)’ 개념과 맞닿아 있다. 일과 직업을 단지 선교를 위한 도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선교로 보는 개념이다.
'어머니학교'에 참여한 현지 여성들이 각자 적은 성경 말씀 노트를 펼쳐보이고 있다.

강 선교사는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목적으로,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선교 개념이다”며 “일터에서의 전문성, 고용인들에 대한 인간적 대우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고 부연했다. 주 선교사는 “목회자나 교회 중심에서 벗어나 이제는 평신도 선교사 중심으로 전문성을 갖고 현지인 일상에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선교 사역이라야 복음이 더욱 잘 전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8년 실수로 못을 삼키는 바람에 급히 귀국해야 했던 강 선교사나,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던 주 선교사나 모두 숱한 고비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 기적과 주신 위로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아낌없는 지원과 격려를 보내주는 후원교회인 청주 상당교회(안광복 목사)도 감사 거리다. 이들의 이 같은 고백은 2022년 펴낸 책 ‘선교사의 뒷모습’(비아토르)에 오롯이 담겼다.
강 선교사가 릴롱궤 말라위대학교 보건대학 내 에바다치과진료소 한쪽에 마련된 치과 진료실에서 현지 의사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강 선교사는 앞으로 현지 치과의사들과 치과대 학생들을 교육하는 일에 집중해 말라위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헌신하려 한다. 강 선교사는 “선교사 개개인의 교회개척보다는 현지 교단과의 협력을 강화해서 현지 교단의 방침이나 방향에 맞는 사역이 돼야 한다”며 “의료 선교도 큰 선교병원보다는 작은 진료소 규모로 현지인과 가깝게, 또 미래를 준비하는 현지인 교육에 집중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말라위 전 국민이 의료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현실의 간극을 매꿔나가는 일에 헌신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주 선교사는 ‘어머니학교’를 현지에 정착해 현지 가정을 회복하는 일에 관심이 크다. 주 선교사가 우크라이나에서 시작한 여성 소그룹 모임 사역은 몽골에서의 어머니학교 사역으로 확대됐고, 현재 말라위에서도 어머니학교 사역을 정착시키려 노력 중이다.

주 선교사가 최근 릴롱궤 CCBC교회에서 진행한 제4기 어머니학교 프로그램 모습. 주 선교사 제공

주 선교사는 사역 초기를 회상하며 “말라위의 한 현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도중 그곳에서 찬양하는 여인들의 모습 속에서 그들의 어머니상과 여성상을 보게 됐다”며 “그동안 말라위 여인들은 늘 가난하고 힘없고 도움을 구하는 불쌍하고 나약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날만큼은 하나님께서 그들도 나와 똑같은 어머니임을 보게 해 주셨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동안 기본적인 시설 미비 등 현실적인 문제로 어머니학교 프로그램을 꾸려 나가기 어려웠는데 그 이후부터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붙여주시고 필요를 공급해주셨다”며 “오는 7월 다섯 번째 어머니학교를 준비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강 선교사는 “그저 하나님 나라의 한 일원으로서의 맡겨진 역할을 해 나갈 뿐이다”며 “하나님 나라 안에서 오직 그분의 영광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다”고 고백했다. 주 선교사는 “사역으로 나를 증명하려 했던 내 젊은 날의 치기를 버리고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말라위에서의 모든 발걸음과 노력이 주님께 부어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릴롱궤·구물리라·잘레카(말라위)=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