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몰래 녹음’을 근거로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교사에 대해 최종 무죄를 확정했다. 동의 없는 녹음으로 수집된 녹음파일은 물론 이를 전제로 한 당사자 진술 등도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한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5일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는 초등학교 교사 A씨에 대한 재상고심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확정했다.
A씨는 2018년 3~5월 학교 교실에서 담임을 맡은 초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다” “학습 훈련이 전혀 안 돼 있다”고 말하는 등 정서적 학대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런 발언은 피해 아동 부모가 아동학대를 의심해서 아이의 가방에 몰래 넣은 녹음기에 담겼다. 피해 아동 부모의 신고로 수사가 시작됐고 해당 녹음파일도 증거로 제출됐다.
1심은 유죄를 인정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에선 일부 공소사실이 무죄로 판단되면서 벌금 500만원으로 감형됐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에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이런 취지에 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쟁점은 ‘몰래 녹음’ 파일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다. 파기환송 당시 대법원은 “피해 아동 부모가 몰래 녹음한 피고인의 수업 시간 중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 해당한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판단했다.
파기환송심에서 검찰은 녹음된 내용을 전제로 한 A씨의 수사기관 및 법정 진술, 피해 아동 부모의 진술 등 2차 증거를 토대로 유죄를 다퉜다. 하지만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2차 증거의 증거능력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녹음파일이 없었다면 수사기관으로선 피고인이 한 발언을 특정하기도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 아동 부모의 경찰 진술조서 및 117신고상담 내용도 녹음파일 등에 기초한 2차적 증거로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밝혔다.
검찰이 재상고했으나 이날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이번 판결은 웹툰 작가 주호민씨 사건 등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앞서 주씨 아들에게 “나도 너 싫어” 등 발언을 한 혐의를 받는 특수교사 A씨는 1심 유죄가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주씨 아내가 아들 외투에 넣어둔 녹음기에 녹음파일이 핵심 증거인데, 이에 대한 증거능력 판단이 갈렸기 때문이다. 주씨 사건은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주씨 아들이 자폐아라는 점에서 다른 결론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언어능력이 온전하지 않은 생후 10개월 아기에게 돌보미가 한 욕설을 녹음한 사건에선 대법원이 돌보미에게 벌금형을 확정한 바 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