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선교계가 ‘동원’에서 ‘형성’으로, ‘1차 진료’에서 ‘전문 기술 전수’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5일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개회한 제19차 한국의료선교대회(대회장 박준범 선교사)와 그에 앞서 같은 장소에서 열린 한국의료선교사대회(대회장 주누가 선교사)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7일까지 열리는 올해 의료선교대회는 ‘회복과 소망’(Restoration & Hope)을 주제로 열렸다. 참가자 1000여명 중 200여명은 의료계 진출을 앞둔 학생이었고 중장년 의료인도 다수 참석했다. 2박 3일간 저녁 집회와 주제별 패널토의 직능별 소그룹 네트워킹, 선택 강의 등의 순서가 진행된다. 4~5일 열린 선교사대회에는 16개국에서 사역 중인 52명의 의료선교사가 모였다. 의사 간호사 약사 보건 전문가 등 다양한 직군의 의료선교사들은 본 대회 기간 멘토로 참여해 참가자들과 소그룹 모임과 1:1 만남을 이어간다.
5일 국민일보와 만난 박준범 선교사는 이번 대회의 핵심 키워드로 ‘멘토링’을 꼽았다. 그는 “선교사는 비행기만 탄다고 되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삶과 신앙 직업이 하나로 연결되는 긴 여정 속에서 멘토링이 중요한 통로가 된다”고 말했다.
박 선교사는 “과거에는 선교를 완성된 요리처럼 비전을 받으면 바로 떠나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했다”며 “이제는 청년과 학생들이 선교사의 삶과 고민을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다시 설계하게 하는 흐름이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의료라는 특수한 분야 안에서 선교 멘토링은 더 실감 나게 작동하며 실제로 현장을 직접 방문해 볼 기회도 열린다는 것이다.
대회 준비위원장인 김병선 전주 예수병원 소화기내과 과장은 “의료선교의 특성상 참가자 대부분이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서 단순한 동기부여보다는 깊이 있는 멘토링과 전략적 교류에 초점을 맞췄다”고 거들었다. 그는 “선교지마다 필요한 의료 분야가 다르고 선교사들의 요청도 다양해서 전문 인력과 선교 현장을 어떻게 잘 연결하느냐가 핵심”이라며 “이번 대회는 그런 의미에서 쌍방을 연결해주는 플랫폼 역할을 의도했다”고 설명했다.
22년째 파키스탄에서 사역 중인 임상병리사 박바나바(가명) 선교사도 이와 같은 전환에 공감했다. 그는 “의료인은 보통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를 받지만 그런 삶을 내려놓고 선교의 길로 나아가는 결단은 예수님의 성육신처럼 자기 비움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는 의료선교의 방법론에서도 전환점을 제시한다. 심재두 한국누가회 이사장은 “전임 사역자 감소와 전략 부재, 학문적 고립 등 의료선교의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며 “기초 진료 중심의 단기 봉사가 아니라 전문 기술 전수와 의학교육, 현지인 제자화 중심의 접근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선교사에 따르면 한국 의료선교사의 수는 2022년 702명에서 지난해 651명으로 2년 사이 약 7.3% 감소했다. 심 선교사는 알바니아에서 22년간 내과 의사로 사역했고 현재는 7000명의 의료선교사를 세우기 위한 ‘7000M 운동’을 이끌고 있다.
그는 “의료선교는 교회와 의과대학, 병원이 함께 감당해야 하는 공동 과제”라며 “단순 후원이 아닌 구조적 연결과 전략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준범 선교사도 “전 세계적으로 의료 수준이 올라가면서 예전처럼 작은 보건소에서 진료하는 수준의 1차 의료 선교만으로는 더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2차, 3차 의료 지식과 기술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선교 현장에서 더 절실히 요구된다”며 “한국의 임플란트나 안과 기술처럼 세계적 수준의 의료 역량을 가진 이들이 선교 현장에 필요한 시대”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의료선교대회 첫날 저녁 집회에서는 이상학 새문안교회 목사가 ‘의료선교, 그 건강한 자리매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다.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