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은혜의 결혼식 4

입력 2025-06-04 11:13

H 자매의 아버지는 일본 동경 제국대학 문학부를 거쳐 미국의 컬럼비아대학과 캘리포니아 대학교를 거친 법학 박사였다.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정치에 입문하여 참의원과 국회 참의원 부의장을 비롯해 전라남도 도지사와 세계적십자총회 한국대표를 역임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세상의 경력을 내려놓고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신학을 마친 후 목사 안수를 받으셨다. 해박한 지식가로 화려한 명예의 중심에 계시면서도 늘 겸손하신 그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느 날, 우리 부부를 집에 초대하셔서 신앙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그분의 사촌 형이 내 고향 거금도 오천교회의 황 전도사님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여섯 살 때, 전도사님은 등에 북을 매고 내 고향 거금도, 감남골 우리 집 앞을 수차례 지나며 둥둥 북을 치면서 복음을 전했다. 또 비 오는 날이면 시골 아이들을 이끌어 빈집 헛간에 모아놓고 창세기부터 노아의 방주를 동화로 엮어 얘기해 주시던 작은 예수님이셨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찬양 부르시던 그분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우리 집 앞으로 다니지 못하게 장대를 휘두르던 우리 오빠들과 할머니의 호령에도 “내 아버지를 좋아하신다”며 “우리 국애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딸이 되도록 기도해 주겠다”던 황 전도사님, 나를 안아 주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 기도해주시던 그 전도사님의 동생이 H 자매의 아버지인 황 박사님이라니 놀라웠다.

H 자매와 그의 신랑은 신혼 때부터 아버지에게 경제적 부담을 드리지 않으려 한동안 도서 외판원으로 일했다. 항상 성실했다. H 박사님은 명동에 오픈했던 내 업소를 직접 찾아오셔서 격려해 주셨다. 그때 박사님의 사위가 된 그 형제는 대영 백과사전 브리태니커 외판원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H 자매에게 연락이 왔다. 잉태했다는 것이다. 나는 가게 현관으로 뛰어나와 그의 손을 붙잡으며 축하했다. 얼마나 기쁘던지, 그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분명한 기적이었다. 어려움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놀랍고도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의 힘에 하나님도 감동하셨을까.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 아버지는 장애인인 딸이 마음껏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는 미국으로 거처를 옮겨 주었다. 그들이 넓은 세상 미국으로 떠나던 날 언젠가 훗날 우리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헤어졌다. 그녀의 어머니 권사님은 얼마 후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다.


<석양노을>
-김국애

해저물녘 하늘 저편에
시무룩한 노을이 덮인 것은
무엇이 안 풀려서가 아니다
지상에 허구 많은 악취,
저 신선한 노을을 향하여
무작정 치솟아 오르는
속세의 오염물 때문이리라
성스러운 노을빛이 지쳐있다

잿빛 홑이불 벗기어 내려는 지킴이
저 높은 하늘의 영역
그 위의 존엄, 그분 눈길 앞에서
감히 야훼의 걸작품 훼손하려느냐,
심오한 노을사리 버물어진 석양
먹음직한 호박시루떡의 전시장
켜켜이 쌓인 저 풍성한 하늘 곳간
뭇 영혼들의 허기를 채우려는가,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계간 현대수필 운영이사, 수필집 ‘길을 묻는 사람’ 저자. 이메일 gukae8589@daum.net

정리=

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