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조선호텔 미용실은 말 그대로 유행의 보급처 같은 곳으로 유행의 산실이었다. 최고의 입지에 세계의 문화예술 정·재계 CEO들은 조선호텔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세기의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도 조선호텔에서 투숙했으며 여성 CEO는 맨 먼저 미용실 예약을 최우선으로 한다.
존슨 대통령을 비롯해 지미 카터 대통령도 조선호텔에서 여정을 풀었다. 세계 굴지의 거장들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을까. 대한민국의 홍보 매신저 역할을 감당했던 조선호텔은 세계 문화예술과 정치 권력을 아우르는 성지 같은 곳이었다. 우리나라가 이제 막 세계시장을 향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펼쳐나가기 위해 준비된 아담한 요충지라고 불리었다. 국제적인 행사가 줄지어,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기에 결혼 예약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체가 자유롭지 못한 딸을 배려한 아버지의 사랑은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눈물겨웠다. 딸을 안고 식장으로 들어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눈 속에도 벌써 눈물이 맺혀 있었다. 모든 하객은 눈물 반 기쁨 반으로 결혼식장은 고요했다. 하객 중에는 여러 명의 외국인도 함께했다. 웨딩마치가 끝나고 찬양이 울려 퍼졌다. 양가를 대표해 부모 자리에는 오직 H 자매의 아버지 한 분이었다.
나는 H 자매와 청년의 축복을 빌었다.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결혼 이후 미용실에 올 때마다 H 자매가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는 자신의 삶을 간증했다. 신랑은 불구 아내를 헌신적으로 돕는 배필의 의무를 가감 없이 행하는 그리스도 제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주변 하객들의 중보기도대로 요셉 같은 신실한 신랑은 헌신적으로 아내를 돕고, H의 아버지는 하나님의 기적을 만난 기쁨으로 충만했다. 때론 증오심과 미움마저도 다른 사랑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 어머니는 딸을 향한 근심으로 맘 편할 날이 없었을 것이다. 권사님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얼마나 많이 또 자주 비켜 서 있는지 나 자신을 되돌아보곤 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 1)
매일 매시 “주님께 다 맡기겠습니다”라고 기도하면서도 교회 문밖을 나서면서는 방금 고백한 근심 보따리를 다시 챙겨 안고 돌아오는 부실한 우리, 권사님을 보면서 동시에 한심스러운 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훗날, H 자매의 아버지인 장로님은 딸의 혼사 문제로 권사님과 다툼이 잦았다고 하시며, 부부가 한마음이 되지 못해서 딸을 슬프게 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또한 6·25 전쟁 중 피난 생활에서 병들어 불구가 된 딸에게 사랑의 빚진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하나님이 은혜로 채워 주셨다고 간증했다.
H 자매는 극진한 효녀였다. 그녀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던 것은 건강한 청년들도 전도지를 들고 나서기가 쉽지 않은데 장애를 안고 사는 자신의 불편을 개의치 않는 주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시공을 초월한 그녀의 열정은 표정에서 나타났다. 그 힘든 몸으로 신학 공부를 하면서 복음 전하는 사명자의 모습을 망각하지 않는 성령 충만한 주님의 제자였다.
<늦둥이>
-김국애
어스름한 밤길에
외길을 밝히는 즐비한 꽃불
수백송이 붉은 영산홍이다
너희들 뒤늦게 웬일이니
어디 숨어있었느냐
놀란 걸음으로 다가갔다
너희들 가출했었구나
우리 늦둥이랍니다
만개하던 삼사오월에
눈부시게 피어내더니
무엇이 아쉬웠을까
늦둥이, 받아본 이들만 안다
금쪽같은 선물,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
꽃은 시들어 떨어지고
새파란 입새만 남아
서운했던 그 자리에
뒤늦게 찾아온 늦둥이
늦둥이 안아본 이들만 안다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계간 현대수필 운영이사, 수필집 ‘길을 묻는 사람’ 저자. 이메일 gukae8589@daum.net
정리=
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