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공연예술의 해외진출은 국제적 네트워킹 가진 전문가 양성이 중요”

입력 2025-06-03 04:30
2025 문화예술세계총회 참석차 내한한 질 도레 시나르(CINARS) 대표가 최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윤웅 기자

서울에서 28~30일 열린 ‘2025 문화예술세계총회’는 세계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3년마다 모여 예술계 의제를 논의하는 국제 행사다. 올해는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 확산, 기후 위기 등의 문제를 주제로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세계 65개국에서 온 106명의 연사 가운데 캐나다에서 온 질 도레 시나르(CINAR, Commerce international des arts de la scene) 대표를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만나 K-공연예술의 해외 진출과 관련한 조언을 들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2년마다 열리는 세계적인 공연예술마켓인 시나르가 캐나다 단체뿐 아니라 해외진출을 희망하는 세계 공연예술가들의 플랫폼으로 평가받고 있어서다. 서울아트마켓(PAMS)이 2005년 창설될 때 참고한 모델이기도 하다.

시나르는 북미 최대 규모 공연예술 아트마켓

배우 출신의 공연 기획자 및 제작자인 도레 대표는 2000년대 초부터 시나르에서 공연예술단체의 해외 투어, 공동제작과 협업 등 국제개발 분야를 담당하다가 지난해 시나르의 수장이 됐다. 1964년 시나르를 창설하고 40년간 이끌어온 알랭 파레의 뒤를 이은 그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공연예술이 처한 여러 어려움 속에서 비전을 가지고 잘 대처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도레 대표는 “인터넷을 통한 초연결 시대라고 해도 공연예술은 결국 사람들의 만남과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면서 “국제적인 네트워킹을 가진 공연예술 전문가들을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질 도레(오른쪽에서 세번째) 시나르(CINARS) 대표가 2025 문화예술세계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시장은 예술을 공급하는 예술가(단체)와 그 수요자인 관객 그리고 그 사이에서 둘을 매개하는 기획자(축제나 극장의 프로그래머나 프리젠터 등)로 크게 구성된다. 예술가와 기획자 사이에 1차 시장, 기획자와 관객 사이에 2차 시장이 형성된다. 공연예술 아트마켓은 예술가와 기획자 사이에 네트워킹을 형성하고 거래를 촉진하는 장이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유럽 공연예술축제는 예술가와 기획자들이 모이는 만큼 자연스럽게 아트마켓 기능을 갖는다.

하지만 공연예술의 역사가 짧은 비유럽 국가에서는 자국 공연의 체계적 유통과 해외 진출을 위해 아트마켓을 창설하는 경우가 많았다. 캐나다 기획자들이 자국 공연예술의 해외 유통을 위해 만든 시나르는 이제 북미 최대 규모의 공연예술 아트마켓으로 자리잡았다. 마켓이 열리는 해는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120~150만 캐나다 달러를 지원받지만, 마켓이 열리지 않는 해는 50~70만 캐나다 달러를 지원받는 등 효율적으로 운영된다.

2024 시나르(CINARS) 포스터. 질 도레 대표는 지난해부터 시나르(CINARS)를 이끌고 있다.

도레 대표는 “시나르는 공연예술축제와 성격이 다르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에서 열리는 공연예술축제의 경우 기본적으로 관객이 티켓을 살 수 있는 작품의 프로그래밍에 주안점을 둔다. 예술가와 기획자가 만날 수도 있지만, 그게 핵심은 아니다”면서 “이에 비해 공연예술 아트마켓인 시나르는 예술가와 기획자 등 공연계 전문가들이 서로 만나는 기회를 물리적으로 만드는 데 집중한다. 이곳에서 다양한 네트워킹이 만들어지면서 계약, 협업, 공동제작 등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시대에도 공연예술은 직접 만나는 것이 중요”

2년마다 열리는 시나르는 지난해의 경우 47개국에서 프로그래머 329명, 에이전트와 예술단체 대표 340명, 예술가 476명, 정부나 재단 관계자 234명 등 1379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을 대륙별로 보면 북미 53%, 유럽 29.3%, 아시아 16.3%, 오세아니아 5.3%, 중남미 4.2%, 아프리카 2% 순이다. 그리고 22개의 공식 초청작과 100개의 오프 참가작이 선보여졌다. 도레 대표는 “시나르의 국제 심사위원 5명이 추천한 22개는 공식 초청으로 경비를 부담하고, 나머지 오프 참가작은 캐나다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자유롭게 참가하게 된다. 오프 참가작의 경우 우리가 경비를 대진 않지만 각국 기획자들이 공식 참가작과 함께 볼 수 있도록 홍보해 준다”고 설명했다.

2024 시나르(CINARS)에서 질 도레(오른쪽에서 두 번째) 대표가 공식 초청작을 추천하는 국제 심사위원들과 함께 있다. 시나르 페이스북

시나르를 통해 얼마나 많은 작품이 실제 투어 공연으로 이어지는지 파악하는 것도 도레 대표가 중시하는 부분이다. 시나르를 통해 처음 만난 기획자와 예술가가 거래가 성사돼 실제 투어까지 이어지는 데는 대체로 3년이 걸린다. 도레 대표는 “시나르에 참가한 예술단체와 기획자를 대상으로 매년 설문조사를 벌여 매출 규모를 파악한다. 참가 단체당 평균 3만7800 캐나다 달러(약 3800만원)의 계약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엔 시나르 개최가 1100~1300만 캐나다 달러의 매출로 이어졌는데, 지난해엔 팬데믹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해 예년만큼 올라오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인터넷으로 커뮤니케이션의 속도가 급속하게 빨라지는 등 테크놀로지가 발전해도 라이브가 특징인 공연예술의 매력은 변하지 않는다는 게 도레 대표의 확고한 신념이다. 그는 “기술은 예술가와 작품 등에 대한 정보를 쉽게 발견할 수 있게 하지만 실제 만남을 통한 네트워킹과 그에 따른 작업을 대체하지 못한다”면서 “팬데믹 기간 적지 않은 기획자들이 공연계를 떠난 만큼 지금은 네트워킹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륙을 건너가는’ 국제 투어의 중요성

2025 문화예술세계총회 참석차 내한한 질 도레 시나르(CINARS) 대표가 최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윤웅 기자

이날 도레 대표는 공연계에서 국제 투어, 특히 ‘대륙을 건너가는(overseas)’는 국제 투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근래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일부 예술가는 비행기로 이동하는 투어를 중단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안무가 제롬 벨이 프로덕션의 물리적 이동이라는 일반적인 투어 대신 예술가의 콘셉트가 이동해 현지 창작/제작팀과 협력하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도레 대표는 “환경 문제의 중요성은 예술가들도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들의 포용성과 개방성을 억압하는 극단적인 투어 중단 같은 방식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유럽 내에서는 비행기 탑승 없이 투어가 가능하지만 한국, 호주, 캐나다 같은 나라는 유럽에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유럽이라는 대륙 차원의 봉쇄인 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요즘 예술가(단체)는 투어를 하되 탄소를 줄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환경 문제와 관련해 균형이 중요하다.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예술가들이 포용의 메시지를 전파할 수 없도록 만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