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조선 최초의 개신교인 이수정의 편지, 140년 만에 미국 잡지 원본 공개

입력 2025-06-02 13:53 수정 2025-06-02 20:38
1883년 8월 18일 미국성서공회 헨리 루미스 선교사가 일러스트레이티드 크리스천 위클리에 기고한 ‘개종한 조선 양반’이라는 제목의 기고문. 이수정의 삽화도 실려있다. 김동주 호서대 연합신학대학원장 제공

140여년 전 ‘조선의 마게도냐인’ 이수정(1842~1886)의 삶과 선교 열망이 근대 미국의 대표적 기독교 주간지 ‘일러스트레이티드 크리스천 위클리(the Illustrated Christian Weekly)’의 역사적 기사들을 통해 다시 조명되고 있다. 그에 관한 기고문과 선교 요청 편지는 당시 조선에 복음을 전하려는 미국교회와 성도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고 한국 개신교 선교역사를 여는 계기가 됐다. 이수정 관련 원문 자료의 재조명은 초기 한국교회사가 특히 일본 교회에도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드러내며 오늘날 한국교회에 일본 선교에 대한 영적 책임을 환기한다.

1883년 4월 29일 이수정(뒷줄 가운데)이 세례 직후 찍은 사진으로 오른쪽이 세례를 준 야스카와 목사. 국민일보DB

㈔한일연합선교회(이사장 정성진 목사·대표 정재원)는 2일 선교 140주년·일본선교 20주년을 맞아 이번 자료를 공개하면서 순교 콘텐츠 제작 사역의 확장을 위해 재단법인 WGN(World Good News·이사장 임현수 목사)의 설립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선교회 자문위원장인 김동주 호서대 연합신학대학원장이 10여 년간 소장해온 이수정 관련한 두 건의 문서를 열람해 한국교회에 공개했다.

구한말 사실상 최초의 기독교인이자 한국어 성경 번역 선구자인 이수정은 마가복음을 한국어로 번역했기에 일본을 거친 후 조선에 입국하는 선교사들이 한글 성경을 활용해 선교할 수 있었다. 선교회는 이수정의 발자취와 일본을 통한 복음의 길을 현대 선교 현장과 연결하는 다양한 연구와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1883년 8월 18일 미국의 대중적인 주간지인 '일러스트레이티드 크리스천 위클리' 표지. 김동주 호서대 연합신학대학원장 제공

개종한 조선 양반의 회심, 미국 교회를 움직이다

선교회가 공개한 첫 번째 문서는 1883년 8월 18일 미국성서공회 헨리 루미스(1839~1920)가 일러스트레이티드 크리스천 위클리에 기고한 ‘개종한 조선 양반’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기고문은 이수정의 회심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며 미국 기독교계의 주목을 끌었다. 해당 글에는 이수정의 얼굴을 담은 삽화도 실었다.

'조선의 마게도냐인' 이수정의 모습과 이수정이 한국인 최초로 번역한 주기도문 원문. '우리 아버지 하늘의 계옵시니'로 시작하는 주기도문은 세로 9줄에 총 162자로 이루어져 있다. 국민일보DB

이수정의 마가복음 번역과 출간을 도왔던 루미스 선교사는 일본에서 40여 년간 사역한 아시아 선교의 핵심 인물이다. 루미스 선교사는 기고문을 통해 “선교역사 속 많은 주목할 만한 사건들을 봤지만 다음에 소개할 사실들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없다”며 이수정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이수정은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를 구출한 공로로 조선 조정의 신임을 얻었던 인물이다. 그는 조국에서의 영예를 사양하고 일본 문물 연구를 위해 약 10개월 전인 1882년에 일본에 도착했다. 이수정은 일본의 농경제학자 쓰다 센(津田仙)을 통해 기독교를 처음 접한 뒤 성경 공부를 시작했다. 한학에 능통했던 이수정은 곧바로 한문 성경을 통해 말씀을 접했다. 어느 날 그는 조선을 위한 가장 귀중한 책들 즉 성경이 담긴 바구니를 든 두 사람이 나타나는 신비로운 꿈을 꾸게 된다. 이 꿈을 하늘의 계시로 여긴 그는 더욱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에 매진했고 1883년 4월 28일 도쿄의 야스카와 케이조(安川亨)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루미스 선교사는 “그의 평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은 믿는 자만이 아는 것”이라며 이수정의 신앙에 깊은 감명을 표했다. 당시 조선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생명을 내놓는 일이었음에도 이수정은 모든 학문을 포기하고 성경 연구와 번역, 동포 전도, 한국선교 권유 등의 사역에 매진했다.

1884년 1월 26일 미국의 대중적인 주간지인 '일러스트레이티드 크리스천 위클리' 표지. 김동주 호서대 연합신학대학원장 제공

복음을 향한 간절한 외침

두 번째 문서는 이듬해인 1884년 1월 26일 자로 같은 잡지에 이수정이 직접 쓴 선교 편지이다. ‘조선을 위한 복음(The Gospel for Corea)’이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이수정은 미국 선교사들의 파송을 간절히 호소했다. 이수정은 해당 글에서 “기독교인은 복음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이 땅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조선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분의 백성으로 진리를 간절히 찾고 있으며 진실한 복음을 전해줄 선교사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며 미국 교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행동을 촉구했다.

1884년 1월 26일 미국의 대중적인 주간지인 '일러스트레이티드 크리스천 위클리'에 게재된 이수정의 ‘조선을 위한 복음(The Gospel for Corea)’이라는 제목의 원본 편지. 김동주 호서대 연합신학대학원장 제공

김동주 호서대 연합신학대학원장은 1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이 주간지는 당시 미국에서 수천만 명의 크리스천이 구독한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매체였다”며 “단순한 선교 보고서가 아니라 일반 성도들이 매주 읽는 신문에 이수정의 호소가 실렸다는 점은 한국 선교에 대한 미국 교회의 큰 관심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10여 년 전 한 미국인 청년이 증조부부터 물려받아 보관해오던 원본 전부를 넘겨받게 되면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원장은 “이 자료가 한국교회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선물처럼 느껴졌다”며 “이는 단순한 고문서가 아니다. 시대를 향한 외침, 성령이 새긴 선교의 흔적이 그 안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목회자 세미나와 성지순례 등에서 이 자료들을 활용하고 있다.

이 문서들은 최근 나가사키 등 일본 순례지를 통해 복음의 길을 되새기는 WGN 주관 성지순례 현장에서도 소개되며 참여자들에게 한일 복음 역사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김동주 호서대 연합신학대학원장

선교 운동의 기폭제

김 원장은 “한국 교계에서는 이수정의 한국 선교를 요청한 편지가 1884년 4월 선교 잡지 ‘미셔너리 리뷰(Missionary Review)’에 처음 실린 것으로 알려졌다”며 “선교보고서에 실린 편지보다 3개월 앞선 1월 해당 잡지에 편지의 원본이 게재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1885년 4월 호러스 G. 언더우드와 헨리 G. 아펜젤러 선교사가 조선에 오기 1년 반 전에 이미 이수정의 회심이 미국 교회에 대대적으로 소개되었기에 결과적으로 지난 세기 1000여 명의 미국 선교사들이 내한하는 역사의 단초가 되었다”며 “잡지를 통해 확인하듯 미국 크리스천들은 이수정을 통해 한국을 알고 기도했다. 이수정의 편지와 간증이 미국의 선교 운동에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나가사키 등 순례성지를 발굴해온 선교회는 순교 및 선교 콘텐츠 제작 차원에서 이수정에 대한 다면적 고찰을 강화할 예정이다. 정재원 선교회 대표는 사역 초기부터 일본 선교에 관심을 두고 이수정을 연구해왔다고 전했다. 정 대표는 “일본교회가 조선에 복음이 들어오는 통로가 됐고 그 시작에 이수정이 있었다”며 “이번 문서 발견을 통해 한국교회가 다시금 일본교회에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이수정은 단지 조선의 첫 신자 그 이상이며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다시 품어야 할 이유 자체”라고 전했다.

이어 “이번 사역이 단발성 기념사업에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와 세계 교회가 함께 복음을 품을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며 이를 위한 콘텐츠 개발과 국제 협력도 지속해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