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받기 위해서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을 갈구하며 눈에 보이는 어떤 자격을 갖추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어려서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연봉이 높은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 게다가 다정다감해야 하고 유머 감각도 넘쳐야 한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까지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금상첨화다. 나이가 들어서는 풍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주위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가진 것을 베풀 수 있다면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 중년의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군대에 다녀온 뒤 곧바로 식품제조업체에 취업했다. 누구보다 성실했던 그는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당시 여느 노동자처럼 그도 30세쯤 결혼했다. 아내는 그가 다니던 회사에서 납품하던 마트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납품 관계로 자주 보면서 정이 들어 결혼까지 했다. 결혼 1년 만에 첫 딸이 태어나서 아내는 육아 때문에 마트 일을 그만뒀다. 그리고 결혼 3년째 둘째 아들까지 태어났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그 덕분에 회사에서도 인정받아 부장까지 승진했고, 연봉이 높지는 않았지만, 무난히 생활비와 아이들 학비를 댈 수 있었다. 그가 가족을 부양하는 동안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있는 힘을 다해 사랑했고, 가족의 사랑을 받는다고 느꼈다.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을 가지 못한 점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에 가족에게 인정받기 위해 더욱 애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가족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 그 힘으로 힘든 회사 일을 견뎠다.
그러나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그는 50대 중반의 나이에 명예퇴직을 해야 했다. 갑작스러운 명예퇴직으로 집에 있기를 1년. 퇴직금도 생활비로 거의 소진되면서 아내와의 다툼이 잦아졌다. 성인이 된 아이들 눈치도 보였다. 그는 가족들로부터 다시 사랑받는다고 느끼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큰 빚을 내서 회사가 거래했던 제법 큰 마트를 인수했다. 처음에는 제법 쏠쏠했다. 집에 돈을 가져다주니 가족들은 다시 사랑을 주었다. 아니. 그가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가족의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는 더욱 열심히 일했다. 몇 년 동안은 회사 다시던 시절보다 좋았다. 가족은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코로나19가 닥친 것이다. 마트의 매출이 급전직하했다. 계속된 적자로 빚은 더욱 늘었다. 그의 모든 재산을 털어 넣은 것도 부족해서 그와 아내의 형제자매, 친한 친구들에게도 돈을 빌려야 했다. 그렇게 버텼건만, 코로나19가 종료되었음에도 매출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 사이 빚은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파산신청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가족들 볼 면목이 없었고, 사랑도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아내와 아이들이 다가왔다. 회복불능에 빠졌다고 생각한 그에게 다정한 말로 위로와 희망을 심어주었다. 함께 눈물을 흘리며 다시 일어서자고 다짐을 했다. 그는 모든 재산을 잃고 비로소 가족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했다.
사랑받기 위해 꼭 영웅이 되거나 무언가를 베풀거나 유쾌한 유머를 구사해야만 하는 것일까. 자격이나 능력, 또는 둘 다 갖추어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게 되면서 매력이 넘치고 능력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빅터 위고는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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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