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美 재고 물량 거의 소진… 가격 인상 불가피

입력 2025-06-01 16:39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에서 자동차 가격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 정부가 수입차에 매긴 25% 관세가 적용되지 않는 재고 물량이 거의 소진됐기 때문이다. 다만 시장 점유율이 쪼그라들 수 있고, 미국의 관세 정책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 섣불리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1일 자동차업계에선 현대차그룹이 미국 시장에서 차량 가격의 1%를 넘지 않는 수준에서 판매가를 올릴 거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현대차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수입차에 관세 폭탄을 던졌을 당시 “6월 2일까진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업계에선 ‘6월 2일’을 현대차가 미리 비축해둔 재고 물량으로 버틸 수 있는 시한으로 봤다. 콕스 오토모티브는 지난 4월초 기준 미국에서 현대차의 재고 소진 예상 기간을 94일, 기아는 62일로 예측했다.

업계에선 재고 물량이 바닥을 보이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의 가격 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판매량 중 수입 물량 비중은 65% 수준이다. 주요 글로벌 완성차업체 가운데 현대차그룹보다 수입 비중이 높은 업체는 폭스바겐그룹(80%)이 유일하다. 도요타나 르노·닛산·미쓰비시 등은 50% 안팎이고 혼다는 35%에 불과하다. 교보증권은 “현대차가 관세로 부담해야 할 돈이 6조원에 달할 것”이라며 올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7.5%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2~3주 안에 가격을 올리는 방향으로 결론을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빠르게 점유율을 늘려가던 미국 시장에서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가 1일 발표한 ‘5월 수출입 동향’(잠정)을 보면 한국의 지난달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18억4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2% 줄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미국 관세 조치가 세계경제와 우리 수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점도 쉽게 가격을 올리기 힘든 이유다. 미국 연방국제통상법원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정부의 상호관세 정책을 월권으로 판단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미국 시장에서의 가격 정책이 고민스러운 건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메르세데스 벤츠, BMW 등은 공식적인 가격 정책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포드는 가장 먼저 가격 인상을 결정했다. 멕시코산 3개 차종의 가격을 최대 2000달러 올리기로 했다. 예일대 예산 연구소는 미국 관세 정책의 여파로 자동차 가격이 평균 5%가량 인상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