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금리 수룡저수지. 저수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한켠에 그림 같은 교회당이 들어섰다. 아담한 종탑 기둥엔 ‘길 위에서 묻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고 내부는 성인 4~5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다. 3평 규모 예배당은 목재와 벽돌로 지어져 따뜻함과 평안함을 선사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상징하는 촛대와 십자가, 성경이 비치돼 있다. 냉난방 시설도 갖춰져 방문자들에게 편안한 환경을 제공한다. 교회당 정면 상단에 선명히 보이는 종탑은 특별한 사연을 가진다. 설계자는 예수께서 머무실 집을 짓고 싶다는 마음으로 종탑을 작은 집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지난 29일 새롭게 봉헌된 ‘순례자의교회’ 모습이다. 순례자의교회는 예배당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전통적인 교회 틀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깊이 만나는 ‘영적 쉼터’를 표방한다. 이곳은 교회다움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한 목회자의 오랜 기도와 묵상이 깃든 장소다.
봉헌예배는 이 교회 설립자인 김태헌 산방산이보이는교회 목사의 인도로 시작했다. 김병삼 만나교회 목사가 고린도전서 9장 19~23절을 본문으로 ‘이유가 있는 교회’를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김병삼 목사는 “모든 교회가 동일할 필요는 없다”며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때로는 유대인처럼, 때로는 율법 없는 자가 된 것처럼, 교회도 다양한 이유로 존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공동체다. 어떤 이는 그 안에서 헌신하며 불편함을 감수하고, 또 다른 이는 위로와 기쁨을 누린다”면서 “순례자의교회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후 이어진 순서에서는 교회당과 신앙 유산 봉헌식이 진행됐다. 특히 이번 교회 설립에 뜻을 함께한 이의신 장로와 조영자 권사 부부(만나교회)가 봉헌자로 소개됐다. 두 사람의 재정적 헌신과 신앙적 결단은 교회의 설립을 가능케 한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 이의신 장로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년, 쿠웨이트에서 2년, 미국에서 10년, 요르단에서 4년 등 총 18년을 외국에서 현지인들과 함께하며 살아왔다”며 “돌이켜보면 고비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은혜가 눈물겹도록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이 장로는 “나이로 인해 복음을 직접 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혼 51주년을 기념해 ‘말씀과 은혜를 받을 장소’로 순례자의교회를 세울 수 있어 감사하다”고 전했다.
순례자의교회는 기존 교회와는 다르다. 정기예배도, 등록 교인도, 상주 목회자도 없다. 조직과 제도, 프로그램을 중심에 두지 않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을 본질로 삼는다. 교회를 설립한 김태헌 목사는 ‘존재론적 교회’라고 정의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고요한 묵상과 기도, 영적 치유를 통해 깊은 내면의 회심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참된 만남을 이룬다.
김태헌 목사는 “이 교회를 통해 비기독교인들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접하고 쉼을 갈망하는 이들이 안식을 누리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특히 기존 교회에 소속되지 않은 이른바 ‘가나안 성도’들을 위해서도 열려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총 19곳에 순례자의교회를 건립할 예정이다. 향후 건축되는 교회에는 봉헌자의 삶과 믿음을 기록하는 ‘신앙역사기록관’과 원할 경우 유택(기독교식 묘지)도 함께 조성해 다음세대에 믿음의 유산을 전할 계획이다.
김 목사는 신학생 때부터 교회다움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그러다가 정필란(포항송도교회) 권사의 헌신으로 2012년 제주에 첫 순례자의교회(제주시 한경면)를 세웠다. 이후 동회천순례자의교회(2018) 교동순례자의교회(2020) 임진각순례자의교회(2024)가 건립됐고 이번에 태안 순례자의교회를 완공했다. 현재 전남 무안에도 순례자의교회가 건축 중이다.
이날 김병삼 목사는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이 세우셨으니 주님이 주인 되어 주시고,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여 주소서.”
태안=글·사진 김성지 객원기자 jong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