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최전선에 왜 교사 혼자 서있나”… 제주서 숨진 교사 추모문화제

입력 2025-05-30 22:47 수정 2025-05-30 23:21
30일 제주도교육청 앞마당에서 지난 22일 숨진 제주 모 중학교 교사 추모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문정임 기자

지난 22일 숨진 제주 모 중학교 교사를 추모하는 문화제가 30일 오후 제주도교육청 앞마당에서 열렸다.

제주교사노조, 전교조 제주지부, 제주교총 등 6개 교원단체가 공동 개최한 이날 추모 문화제에는 도내외 교사와 학생,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고인을 추모하고,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교원을 보호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교육당국에 강력히 요구했다.

고인과 20년 간 함께 근무한 동료 교사 안현하씨는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눈물이 난다”며 “힘든 걸 미리 알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졸업한 제자 현지호군은 “선생님은 늘 학생이 우선이었고, 우리를 부모처럼 품어주셨다. 졸업식날 포옹하며 또 찾아뵙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돼 죄송하다”고 했다.

유가족 대표로 추모사를 한 고인의 처남 김희철씨는 “이렇게 날이 좋은데 함께 하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고인은 따뜻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빠였다”며 “인권과 교권이 공존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유족이 위안 받을 수 있도록 순직을 인정해달라”고 호소했다.

30일 제주 교사 추모문화제에서 교원단체 관계자들이 교육 당국에 대책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문정임 기자

교사들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제주실천교육교사모임 손승표 교사는 “2년 전 이 자리에서 서이초 교사를 추모했는데, 다시 이 자리에 서게 돼 마음이 아프다”며 “고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더 이상 이런 비보를 접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김수연 제주교사노조 정책실장은 “왜 교사들이 민원의 최전선에 홀로 서 있어야 하는지, (서이초 사건 이후) 지난 2년간 교육당국을 뭘 한 건지, 교육 현장이 바뀌는 데 왜 이런 희생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민호 전교조 제주지부 정책실장은 “민원 대응팀은 종이 위에만 존재할 뿐”이라며 “이제는 보여주기식 대책이 아니라 실질적인 보호가 필요하다”고 했다.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교사들이 '우리가 서로를 지킵시다'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문정임 기자

김광수 제주교육감은 “또다시 학교 현장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매우 가슴이 아프다”며 “교권 보호를 위한 대책을 재정비해 선생님들이 체감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했다.

교육감의 발언이 끝나자 “사과하세요”라는 항의가 터져 나왔다.

김광수 교육감은 “이런 사과라면 얼마든지 하겠다. 얼마든지 제도를 바꾸겠다. 하지만 제도가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다”며 “이런 안타까운 일로 가슴 아파하는 후배들의 얼굴을 차마 쳐다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교사들은 ‘진상규명이 추모다’ ‘우리가 서로를 지킵시다’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추모제에서 만난 한 교사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된다”면서 “학교 현장에서 민원이 발생했을 때 갈등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인은 지난 22일 자신이 근무하던 제주 모 중학교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교사는 학생 가족의 민원으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교육청은 내달 2일 교권 보호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