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인가? 사랑인가?…한국교회와 극단적 정치세력의 위험한 동행

입력 2025-05-29 20:54 수정 2025-05-29 22:47
정경일(단상) 성공회대 연구교수가 29일 서울 장충동 성베네딕도회 서울수도원 피정의집 대강당에서 열린 ‘2025년 제24회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 포럼’에서 ‘교회의 두 길: 기독교 국가와 하나님 나라’란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한국교회를 파고드는 극단적 정치세력에 맞서 한국교회가 타인을 돕고 섬기는 교회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하나님 나라’라는 복음의 중심 가치를 붙잡아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는 29일 서울 중구 장충동 성베네딕도회 서울수도원 피정의집 대강당에서 ‘2025년 제24회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 주제는 ‘한국 그리스도교와 극우의 위험한 동행-신학자의 성찰과 분석으로’였다.

최근 한국사회는 계엄사태와 대통령 탄핵을 지나며 양극화 문제가 한층 더 심해졌다. 교회는 사회를 중재하고 화해자의 역할에 나서야 하나, 한국교회 내 극단적 정치세력은 사회 분열을 촉진했다. 포럼은 이를 신학적으로 성찰하며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보는 시간이었다.
포럼 모습.

정경일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교회의 두 길:기독교 국가와 하나님 나라’란 주제의 강연에서 한국교회의 극단적 보수주의 세력이 ‘기독교 민족주의’를 토대로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는 데 목적을 둔다는 점을 문제로 봤다.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에서 비롯된 기독교 민족주의는 기독교인이 발견한 땅, 세운 땅은 모든 공적 영역에 있어 기독교적 가치관이 국가의 정체성과 정책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개념이다. 정 교수는 이에 기독교 민족주의를 “기독교와 무관한 세속적 이데올로기”라고 규정하며 “기독교 민족주의의 토양인 근본주의 정치 신학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특히 “‘극우’의 문제는 ‘우파성’이 아니라 ‘극단성’에 있다”며 “극우의 증오 행동과 폭력은 반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반복음적이다”고 비판했다. 종교적 신앙을 떠나 폭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없으며, 정치적 이념의 차이를 이유로 타자를 증오하고 폭력으로 제거하려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예수가 가르치고 보여준 하나님 나라의 속성은 사랑과 평화였다”며 “기독교 민족주의와 기독교 국가론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교회가 붙들어야 할 복음의 중심 가치는 ‘하나님 나라’ 운동이다”고 강조했다. 세속적 왕국이나 신정국가가 아닌 차별과 혐오가 배제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재길(맨 오른쪽) 장로회신학대 교수가 이날 포럼에서 ‘히틀러의 파시즘과 본회퍼의 저항’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포럼에서는 한국교회 내 극단적 정치세력이 종종 인용하는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 목사의 저항정신을 올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올해로 순교 80주년을 맞은 본회퍼 목사는 독일 히틀러의 나치 폭정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신학자로 평가받는다.

고재길 장로회신학대 교수는 ‘히틀러의 파시즘과 본회퍼의 저항’을 주제로 강연하며 한국교회 내 극단적 정치세력이 본회퍼 목사의 저항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폭력행위를 정당화한다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본회퍼는 히틀러에 대한 암살 공모에 참여했지만, 그 행동은 그 정당성을 자기 안에서 찾는 ‘이데올로기적 행동’이 아니라, 행위의 정당성을 하나님의 손안에서 찾는, 하나님 앞에서 이웃을 위한 ‘책임 있는 행동’이었다”고 평가했다.

고 교수는 이어 “본회퍼는 옥중서신에서 새로운 교회론적인 비전, 즉 ‘타자를 위한 교회’를 전한다”며 “극우 한국개신교만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이 비전 안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본회퍼가 제시했듯 세상의 과제를 지배하기 위한 교회가 아닌 타인을 돕고 섬기는 일에 관여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는 취지다.
김종생 NCCK 총무가 포럼 시작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협의회 공동의장을 맡은 김종생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는 포럼에 앞선 인사말에서 “한국교회 안에 뿌리 깊이 박힌 원죄 같은 대목들을 아프지만 꺼내봐야 하는 지점이 없지 않아 있다”며 “오늘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됐는데 우리 모두 내란이 종식되고 민주주의 헌정질서가 새로워지는 일에 교회가 함께 마음을 모으고 다음을 준비해가길, 함께 지혜를 모으며 서로의 다름 가운데 하나가 되는 여정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