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역시 유전인가… 동일인 기증 정자로 나온 67명 중 10명 발병

입력 2025-05-30 00:01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연합뉴스

유럽에서 한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아 태어난 아이 67명 중 10명이 암 진단을 받았다. 이 남성은 본인이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졌다는 사실을 모른 채 정자를 기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9일 미국 방송 CNN에 따르면 프랑스 루앙대학병원의 에드비주 카스페르 박사는 지난 24일(현지 시각) 이탈리아에서 열린 유럽인간유전학회에서 이런 사례를 발표했다. 정자 기증자는 대표적인 암 억제 유전자로 꼽히는 ‘TP53’에 돌연변이가 있는 남성이다. TP53 돌연변이를 가진 사람은 리-프라우메니 증후군이라는 희귀한 유전 질환을 앓아 신체 각부에서 여러 종류의 암이 발병할 가능성이 크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8개국에 사는 46가족이 이 남성의 정자를 받아 67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이 중 10명은 뇌종양이나 호지킨 림프종(림프구라는 백혈구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 등의 암을 진단받았다. 다른 13명은 TP53 돌연변이를 지녔지만 암이 발병하지 않은 상태다. 카스페르는 이들의 암 발병 위험이 크며 자녀에게 암을 물려줄 확률이 50%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당 남성이 덴마크에 있는 유럽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할 때는 TP53 돌연변이와 암 간 관련성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였다. 기증자 본인도 건강했다. 유럽정자은행은 해당 기증자가 정자 기증 의사를 밝힐 당시 유전병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필요 기준 이상으로 검사했다면서 2만개의 유전자를 가진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예방적 유전자 검사에는 한계가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다.

TP53 돌연변이는 한국인에게서도 종종 보고된다. 한국인의 경우 폐암에서 TP53 돌연변이 빈도가 50%가량으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는 연구가 있다. 유방암에서도 TP53 돌연변이가 예후를 나쁘게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