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1950~2023) 미국 리디머장로교회 설립 목사는 국제 금융·문화 중심지인 뉴욕의 회의론자에게 선명한 복음을 제시한 목회자다. 당파성을 지양하되 성경적 정의 실천엔 충실했던 켈러 목사는 아우구스티누스와 CS 루이스 등을 인용하며 기독교의 진리를 효과적으로 변증했다.
세계 교회에 미친 영향도 지대하다. 국제도시 선교 단체인 ‘리디머 시티 투 시티’ 등을 세워 현대인의 일상 속 복음 실천을 도왔다. 2007년엔 신학자 DA 카슨과 개혁주의 신학에 기반을 둔 기독 연합기구 미국 복음연합(TGC)을 설립해 목회자에게 온라인 교육을 제공했다. 29개국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서 600만 부 이상 판매된 저서는 그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대표작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등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지금도 국내 주요 서점 종교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엔 그의 저서가 여럿 올라있다.
켈러 목사의 2주기를 기념해 번역·출간된 이번 책은 그의 50년 목회 유산을 집약한 것이다. TGC 팟캐스트 진행자이자 미국 리버시티침례교회 목사인 저자가 켈러 목사의 30여 권 저서와 수천 편의 설교, 논문 강연 인터뷰 등을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주제에 맞춰 간추렸다. 그의 생애주기에 맞게 차례대로 배열된 각 장은 기도와 고난, 우정과 소명 등에 관한 켈러 목사의 견해를 다룬다.
이들 주제 중 저자가 가장 먼저 제시하는 건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 읽기’다. 신·구약성경 전체의 핵심을 예수로 놓고 성경을 읽어가는 방식이다. 켈러 목사는 생전 “성경 읽기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성경을 자신에 관한 이야기로 읽는 것’과 ‘예수에 관한 이야기로 읽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자는 성경을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할 일 목록처럼, 후자는 성경을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 이야기로 이해하게 한다”고 했다. 명령이 아닌 은혜로 성경을 바라볼 때, 인간은 그분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은 현대인 내면에 깊게 자리한 우상 숭배 성향을 밝혀낸 책이다. 켈러 목사는 고대인이 금송아지를 숭배했다면, 현대인은 부 성공 권력 등을 우상으로 섬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행복의 필수 조건’으로 예수님뿐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더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경쟁하는 우상”이라며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욘 2:9)라고 말하더라도 우리는 우상이 자신감과 안전감을 제공해주길 바란다”고 꼬집는다.
행실이 좋지 못한 사람뿐 아니라 신앙생활에 열심인 종교적인 사람도 하나님께는 탕자(蕩子)일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도 제시했다. 켈러 목사는 2005년 ‘탕자의 비유’로 유명한 누가복음 15장 11~32절을 설교하며 ‘탕자들’이란 복수 표현을 썼다. 물려받은 재산을 주색잡기에 탕진한 둘째 아들뿐 아니라 자기 뜻대로 아버지를 조종하려고 짐짓 순종한 첫째 아들도 결국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탕자라는 의미다.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한 이 설교는 저서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의 기초가 됐다.
천생 설교자였던 켈러 목사에게 죽음은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할 기회였다. 생전 갑상샘암과 췌장암으로 투병했던 그는 책 ‘팀 켈러의 답이 되는 기독교’에서 “죽음이 이제 기독교인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이들의 삶을 무한히 더 좋게 만드는 것뿐”이라고 선포한다. 켈러 목사는 “떠나는 데 있어 아쉽거나 나쁜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말을 가족에게 남기고 2023년 5월 19일 영면했다. 저자는 “팀 켈러는 특별하거나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는 구주와 삶을 변화시키는 그분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걸 그 무엇보다 사랑했다”고 평한다.
켈러 목사의 명저와 명연설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책이다. 각종 자료의 직접 인용과 방대한 주석은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수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준 작품 속 고갱이를 압축적으로 전달해 ‘팀 켈러 입문서’로 적절하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