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연인이었던 여성을 때려 분리 조치를 당한 30대가 피해자를 찾아가 납치 살해한 뒤 자살한 사건과 관련해 관할서인 경기 화성동탄경찰서가 “조치가 미흡했다”라며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했다. 동탄서는 지난해 6월 20대에게 성범죄 누명을 씌우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큰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강은미 동탄서장은 28일 수원 장안구 경기남부경찰청 제2 회의실에서 ‘동탄 납치 살인’ 사건에 대해 “이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 A씨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도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서도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라는 입장을 밝히며 고개를 숙였다. 강 서장은 “A씨는 112 신고와 고소 등 여러 차례에 걸쳐 가해자 B씨의 처벌과 보호를 호소했으나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경기남부청의 감찰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동탄서는 2024년 9월 9일 112 신고를 처음 접수한 뒤 모니터링 과정에서 B씨의 지속적인 폭행을 확인했는데도 “처벌을 원치 않는다”라는 A씨의 진술을 꼼꼼히 검토하지 않고 경미하게 종결했다. 올해 2월 23일 두 번째 신고에서도 “단순 말다툼”이라는 A씨의 말만 듣고 현장에서 사건을 종결했다. 경찰관들이 떠난 뒤 A씨는 B씨에게 고문에 가까운 가혹 행위를 당했다. 이후 3월 3일 A씨가 B씨가 접근하려고 한다는 정황을 알렸지만 경찰은 추가 안전 조치도, 사건 수사도 신속히 하지 않았다.
특히 동탄서는 600쪽에 이르는 고소 보충 이유서를 받고도 신속히 수사하지 않았고 관리자 보고도 여러 차례 누락됐다. 구속 영장을 신청하기로 해놓고 실제로는 신청하지 않았다. 당시 동탄서 주무과장은 지난달 28일 구속 영장 신청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지만 담당자가 이달 1일 갑작스레 휴직하는 과정에서 업무 인수 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 서장은 세 번째 신고의 사건 처리 과정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며 경기남부청의 감찰 결과에 따라 응당한 처분을 받겠다고 밝혔다.
앞서 B씨는 지난 12일 오전 10시41분쯤 A씨를 자신이 살던 아파트 단지로 납치해 온 뒤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정 폭력을 휘둘러 3월 3일부터 A씨와 분리 조치돼 있던 B씨는 A씨가 임시로 머물던 오피스텔 주소를 알아낸 뒤 직접 찾아가 범죄를 저질렀다.
한편 동탄서가 지난해 성범죄 누명 논란을 일으킨 곳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동탄서의 사과 소식을 앞서 전한 기사 댓글창에는 ‘만만한 남자에게는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지도 않은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성범죄자로 만들더니 정작 600쪽짜리 서류를 내 구속 수사를 요청한 여성 피해자는 모른 체 해 결국 살해당하게 만들었다’ ‘실적에 눈먼 동탄서가 살인을 방조했다’ ‘범죄자는 안 잡고 무고한 시민만 잡아 강압 수사하는 동탄서’ 등 비판 댓글이 많은 추천을 받아 상단에 게시돼 있다.
앞서 동탄서 소속 한 경찰관은 지난해 6월 24일 ‘헬스장 여성 화장실에 들어와 자신을 훔쳐봤다’라는 50대 여성 C씨의 일방적인 진술만 듣고서는 영장도 없이 C씨와 일면식 없는 대학 휴학생 D씨를 찾아가 혐의를 인정하라며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D씨가 동탄서를 찾아 결백을 주장하자 해당 경찰관은 ‘떳떳하면 그냥 가만히 있으라’라고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D씨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적극적으로 공론화하면서 사안이 커졌고 결국 C씨가 허위 신고임을 자백하면서 무고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동탄서가 여성 사건 관련 실적에 눈이 멀어 이런 일을 벌였다는 의혹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이후 이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여성청소년수사팀과 여성안전과 등이 입장문을 내 “그렇지 않다”라고 해명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일로 홈페이지 자유 게시판이 누리꾼의 십자 포화를 받자 동탄서는 7월 게시판을 폐쇄했고 현재까지 다시 열지 않고 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