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교협의회(CWM) 총회 보고서에 ‘재앙의 시대’라는 표현이 담긴 건 지난해 6월이었다. 당시 금주섭 CWM 총무는 기후 위기, 테러와의 전쟁, 기능이 마비된 민주주의를 거론하면서 시대상을 이같이 진단했다.
한데 27일 CWM 본부에서 만난 금 총무는 “재앙의 시간표가 더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기후위기 대응 체계 붕괴와 전쟁 확산, 민주주의 후퇴 문제가 개선되긴커녕 더 심각해졌다”는 이유에서다. CWM은 1795년 영국에서 설립된 런던선교회를 모태로 하는 기독교 선교기구다. 한국 최초의 성경인 ‘예수셩교누가복음젼서’를 번역한 존 로스 선교사와 평양 대동강에서 순교한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를 파송한 단체이고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이비드 리빙스턴(1813~1873)도 이곳 출신이다. 단체가 CWM이란 명칭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1977년부터다. 런던선교회는 1975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서구 교회의 제국주의적 선교 방식을 반성하면서 2년 뒤 지금의 이름으로 단체명을 바꿨다.
금 총무가 재앙의 시간표가 더 앞당겨졌다고 진단한 첫 번째 근거는 기후위기의 가속화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기후위기 대응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도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지구온난화에 대응이 무력화되면서 지구 온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쟁 확산도 위기로 꼽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넘어 이달 인도·파키스탄 군사 충돌까지 전쟁이 서구에서 아시아로 확산하는 현상을 경계했다. 그는 한국 12·3 비상계엄 사태, 아프리카 국가들의 군사쿠데타, 아시아 일부 국가들의 종신황제 체제 고착화 등을 예로 들면서 “민주주의 후퇴가 세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금 총무는 동아시아 평화 구축을 위한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남북한이 가장 많은 총탄을 보유하고 있고, 대만 중국 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면 제3차 대전까지 확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동북아 교회들이 도덕적으로 갈등과 전쟁을 억지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교회를 향해선 민주주의 성숙을 선교적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광화문 태극기 집회가 한국교회의 정치 참여 모델 중 유일한 모델로 비치고 있다”며 “교회가 참여 민주주의에 어떤 식으로 건강하게 공헌할 수 있을지 고민과 합의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CWM은 다음 달 15일부터 나흘간 인천 송도에서 전체 회원 교단과 연례회의를 갖는다. CWM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를 비롯해 전 세계 32개 교단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금 총무는 “다음 달 연례회의에서 지역별 선교포럼을 통해 회원 교단들과 50년간 이어온 파트너 모델을 재평가하고 새로운 선교 방향을 모색할 예정”이라며 “기후위기, 전쟁, 민주주의 후퇴라는 재앙의 시대에 세계교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선교적 목표와 협력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글·사진 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