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속에 위기 담은 미야자키 하야오…“현실 외면하고 아이들 격려할 수 없어”

입력 2025-05-27 16:43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스틸사진.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아이들이 밝고 희망차게 자라도록 격려하는 많은 영화를 만들었다. ‘세계는 어디로 향하는가’ ‘인간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면 우리의 격려는 아무 소용이 없다.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 평생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온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과 영혼’(자연과 영혼)에서 이같이 말한다. 다음 세대를 지지하면서 그들이 걸어나가야 할 현실을 외면하는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의미다.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포스터.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 세계를 그린 ‘자연과 영혼’이 28일 개봉한다.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 40주년을 맞아 프랑스 감독 레오 파비에가 만든 이 다큐멘터리는 그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이웃집 토토로’(1988),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등 대표작을 만들게 된 계기와 세계관, 작업 과정 등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는 자연의 생명력, 인간이 불러 온 기후 위기 등을 그린 작품들을 집중 조명한다. 미야자키 감독이 1982년부터 12년에 걸쳐 연재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오염으로 고통받고 사막과 산성 바다로 뒤덮인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미나마타 해안에서 일어난 수은 중독 사건은 석유화학 산업이 초래한 일본 최초의 대규모 생태 재앙이었다. 여기서 영감을 받은 영화는 풍요로운 동시에 독성이 가득한 자연을 그렸다.



‘이웃집 토토로’는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갔던 유년기 경험을 녹인 작품으로, 거대한 녹나무에 사는 숲의 정령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세상에 대한 암울한 시각과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 사이에서 미야자키 감독은 늘 고민했다.

고베 대지진,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살포 사건 등 우울한 현실 속에서 ‘모노노케 히메’(1997)는 탄생했다. 절망과 혼돈 속에서 태어난 이 영화는 화해를 추구하기보다 파괴에 휩쓸려가는, 살아있는 세계를 그려낸다.



미야자키 감독은 “일련의 재난이 일본을 종말론적 사고로 몰아넣었고, ‘희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있었다”며 “지브리가 편안한 영화를 만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생각을 깨고 싶다는 충동을 참을 수가 없다. 혼란스런 현실을 외면하고 모든 게 괜찮을 거라고 거짓말을 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라고 반문한다.

그가 어린 시절 어떤 생각을 했고, 헌대사의 흐름 속에서 무엇을 비판하고 반성했는지도 작품 세계에 드러난다. 1945년 고향 우쓰노미야에서 겪은 공습은 ‘천공의 성 라퓨타’(1986), ‘바람이 분다’(2013),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에서 그림으로 다시 살아난다. 아버지와 삼촌이 전투기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영화는 미야자키 감독의 과거 인터뷰와 에세이집, 그와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과 그를 연구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전한다. 미야자키 감독의 최근작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는 미야자키 감독의 일생을 관통하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인공지능(AI)이 지브리의 그림체를 복제하는 시대에 “나는 종이와 연필로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운이 좋은 마지막 세대”라고 말하는 미야자키 감독의 말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모노노케 히메’를 제작할 당시 그를 비롯한 지브리 작가들이 총 14만여 장의 그림을 그린 일화도 소개된다. 러닝타임 86분, 전체 관람가.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