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서 ‘아동결혼 금지법’ 통과… “희망의 순간”

입력 2025-05-27 16:28
등교하는 파키스탄 학생들. 로이터연합뉴스

18세 이전에 결혼하는 여성의 비율이 30%에 육박하는 파키스탄에서 ‘아동결혼 금지법’이 만들어졌다.

27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 주 파키스탄 상원에서 아동결혼 금지법이 격렬한 반대를 뚫고 통과됐다. 상·하원을 모두 통과한 이 법은 조만간 대통령 서명을 거쳐 발효될 예정이다.

아동결혼 금지법에 따라 파키스탄 수도에서는 남녀 모두 최소 결혼 연령이 18세로 변경된다. 지금까지는 여성 16세, 남성 18세였다.

새 법은 미성년 결혼을 형사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다. 가족이나 성직자를 불구하고 어린이의 조혼을 돕거나 강요하는 사람에게는 최대 7년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또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는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강간으로 간주되며, 성인 남성이 소녀와 결혼한 것으로 밝혀지면 최대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상원에 이 법안을 제출한 셰리 레흐만 기후변화부 장관은 “이 법안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며 “이것은 우리 국가와 개발 파트너들, 그리고 여성들에게 그들의 권리가 최고 수준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매우 중요한 신호”라고 말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18세 이전에 결혼하거나 동거하는 여성의 수가 전 세계 상위 10위 안에 드는 나라다. 2018년 인구 통계 조사에 따르면 파키스탄에서는 여아의 29%가 18세 이전에 결혼한다.

일찍 결혼한 여성은 학교를 졸업할 가능성이 낮고 가정 폭력이나 학대, 건강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더 높다. 특히 아동 신부의 임신은 사망 위험을 높인다. 10대 여성은 20대 여성보다 출산 중 합병증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더 높다. 파키스탄에서는 50분마다 한 명의 여성이 임신 합병증으로 사망하고 있다.

아동결혼 금지법 제정은 파키스탄 시민사회와 인권단체가 10년 이상 노력해온 성과다. 법안이 지난 7년 동안 3번이나 의회에 상정됐지만 정치인들의 무관심과 종교적 반대 때문에 통과되지 못했다.

일부 종교 및 정치 지도자들은 이 법안에 대해 “이슬람적이지 않다”고 반대하면서 결혼은 가족의 결정이어야 하고 소녀가 결혼할 수 있는 나이는 사춘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안을 강력하게 지지해온 나시마 에흐산 상원의원은 “세상은 변하고 발전했다. 우리는 발전했고, 그 발전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정말 필요한 법안이었다”고 주장했다.

유엔여성기구의 파키스탄 대표인 잠셰드 카지는 “파키스탄 시민사회가 오랜 시간 기다려온 일”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여성 인권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고 있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희망의 순간이다”라고 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