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탄 무장 계엄군 앞 무방비 시민들’ 5·18 시민 촬영 영상 최초 공개

입력 2025-05-27 14:23 수정 2025-05-27 14:24
광주시민 문제성(71)씨가 27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린 5·18 미공개영상 시사회에 참여해 자신이 당시 영상 촬영에 사용한 카메라를 들어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직전 광주의 상황이 촬영된 영상이 45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당시 20대 평범한 회사원이 촬영한 이 영상엔 계엄군의 집단발포에 앞서 계엄군과 시민들 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27일 오전 ‘영상시사회’를 열고 1980년 5월 21일 당시 26세 청년이었던 문제성(71)씨가 8㎜ 카메라로 전남도청 앞 시민들과 계엄군의 대치 상황을 촬영한 5분40초 분량의 영상을 공개했다.

당시 신도리코 광주지사 소속 회사원이었던 문씨는 앞서 회사에서 상품으로 증정받은 영사기를 활용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카메라를 구매했다고 밝혔다. 문씨는 이 카메라를 들고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이뤄지기 직전인 1980년 5월 21일 오전 9시30분부터 11시30분까지 2시간 가량의 옛 전남도청 앞 대치 상황을 촬영했다.

27일 오전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서 열린 5·18 미공개 영상 시사회에서 시민 문제성(71)씨가 당시 촬영한 영상이 공개되고 있다. 이은창 기자

문씨가 촬영한 영상에는 시신 2구를 손수레에 싣고 시위대에 합류하는 시민들의 모습과 시민들이 몰고 온 장갑차 등이 담겼다. 또 계엄군의 최루탄에 후퇴하는 시민들이 몰고 온 장갑차, 금남로 상공을 비행하는 헬기, 저공 비행하는 C-123 수송기의 모습도 잡혔다.

특히 영상 속 광주 시민들은 실탄으로 무장한 계엄군과 불과 50m 떨어진 곳에서 각목 등으로만 무장한 채 무방비 상태로 대치를 이어갔다.

문씨는 이날 “5·18 이후 많은 영상들이 공개되면서 제가 찍은 영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보관하고 있다가 최근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짐 정리를 하면서 필름을 발견해 기록관에 기증하게 됐다”고 밝혔다.

27일 처음으로 공개된 5·18 영상 속 광주 시민들이 각목 등으로 무장한 채 차량을 타고 시위대에 합류하고 있다. 이은창 기자

이어 그는 “당시 영상을 촬영한 뒤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고, 식사 이후 다시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금남로에 나가려 했지만 아버지가 말려 집단발포 모습을 찍지는 못했다. 대신 그 영상을 촬영했다면 오늘 이 자리에 제가 없었을 것”이라며 “5·18 진상규명에 (이 영상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다”고 말했다.

문씨가 영상에 담지 못한 5월 21일 오후 1시쯤, 도청 앞 계엄군은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을 가했다. 이 집단발포로 광주 시민 41명이 숨지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재의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은 “이번 영상은 시위대 속 시민의 시선에서 왜곡 없이 5·18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최초의 영상”이라며 “기존 영상들은 보안사 등을 거쳐 재편집 됐지만 해당 영상은 계엄군의 집단발포 전 상황이 시간 순서대로 고스란히 담겼다. 계엄군의 집단발포 성격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5·18기록관은 기증받은 영상을 고해상도 복원 작업 등을 거쳐 국내외 연구자들과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할 예정이다.

광주=이은창 기자 eun526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