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직전 광주의 상황이 촬영된 영상이 45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당시 20대 평범한 회사원이 촬영한 이 영상엔 계엄군의 집단발포에 앞서 계엄군과 시민들 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27일 오전 ‘영상시사회’를 열고 1980년 5월 21일 당시 26세 청년이었던 문제성(71)씨가 8㎜ 카메라로 전남도청 앞 시민들과 계엄군의 대치 상황을 촬영한 5분40초 분량의 영상을 공개했다.
당시 신도리코 광주지사 소속 회사원이었던 문씨는 앞서 회사에서 상품으로 증정받은 영사기를 활용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카메라를 구매했다고 밝혔다. 문씨는 이 카메라를 들고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이뤄지기 직전인 1980년 5월 21일 오전 9시30분부터 11시30분까지 2시간 가량의 옛 전남도청 앞 대치 상황을 촬영했다.
문씨가 촬영한 영상에는 시신 2구를 손수레에 싣고 시위대에 합류하는 시민들의 모습과 시민들이 몰고 온 장갑차 등이 담겼다. 또 계엄군의 최루탄에 후퇴하는 시민들이 몰고 온 장갑차, 금남로 상공을 비행하는 헬기, 저공 비행하는 C-123 수송기의 모습도 잡혔다.
특히 영상 속 광주 시민들은 실탄으로 무장한 계엄군과 불과 50m 떨어진 곳에서 각목 등으로만 무장한 채 무방비 상태로 대치를 이어갔다.
문씨는 이날 “5·18 이후 많은 영상들이 공개되면서 제가 찍은 영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보관하고 있다가 최근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짐 정리를 하면서 필름을 발견해 기록관에 기증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당시 영상을 촬영한 뒤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고, 식사 이후 다시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금남로에 나가려 했지만 아버지가 말려 집단발포 모습을 찍지는 못했다. 대신 그 영상을 촬영했다면 오늘 이 자리에 제가 없었을 것”이라며 “5·18 진상규명에 (이 영상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다”고 말했다.
문씨가 영상에 담지 못한 5월 21일 오후 1시쯤, 도청 앞 계엄군은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을 가했다. 이 집단발포로 광주 시민 41명이 숨지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재의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은 “이번 영상은 시위대 속 시민의 시선에서 왜곡 없이 5·18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최초의 영상”이라며 “기존 영상들은 보안사 등을 거쳐 재편집 됐지만 해당 영상은 계엄군의 집단발포 전 상황이 시간 순서대로 고스란히 담겼다. 계엄군의 집단발포 성격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5·18기록관은 기증받은 영상을 고해상도 복원 작업 등을 거쳐 국내외 연구자들과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할 예정이다.
광주=이은창 기자 eun526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