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항상 내 마음속에” 6·25 참전용사 랭글 전 의원 별세

입력 2025-05-27 08:32 수정 2025-05-27 08:53
찰스 랭글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 연합뉴스

6·25전쟁 참전용사로 미국 내 지한파 정치인의 상징이었던 찰스 랭글 전 연방 하원의원이 2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4세.

랭글 전 의원의 가족은 그가 이날 뉴욕 맨해튼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랭글 전 의원은 1930년 맨해튼의 할렘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자란 그는 1950년 6·25 전쟁에 참전한 뒤 뉴욕대를 졸업했다. 세인트존스대 로스쿨에 진학해 학위를 받고 이어 변호사와 연방 검사로 활동했다. 이어 1971년 뉴욕에서 연방 하원의원 당선돼 의회에 입성했다.

그는 2017년 1월 은퇴할 때까지 46년간 민주당 소속 의원으로 활동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낸 워터게이트 청문회에서 활약하고, 하원 세입세위원회 최초의 흑인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수십 년 간 민주당과 흑인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거목 정치인이었다. 그는 미국 역사상 9번째로 하원의원을 오래 연임한 정치인으로도 기록됐다.

워싱턴포스트는 “찰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랭글 전 의원은 양당 모두에 친구를 둔 의회 내 인기 인사였다”며 “그는 단순한 타협을 넘어 보수적인 공화당 의원들과도 뜻밖의 연합을 이끌어내는 노련하고 능숙한 입법 장인으로 평가받았다”고 전했다.

고인은 한국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그는 1950년 6·25 전쟁 초기 미 2보병사단 503연대 소속으로 참전해 낙동강 방어전투, 군우리 전투 등 주요 전투에서 싸웠다. 11월 중공군 포탄의 파편에 부상을 입고도 전우 40여명을 이끌고 포위망을 탈출했다. 그는 6·25전쟁 공훈으로 동성무공훈장과 전상훈장(Purple heart) 받았고, 2007년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회고 ‘그 뒤로 내게 나쁜 날은 없었다’의 제목도 중공군의 공격을 받은 날에서 따왔다.

의정 활동에서도 한국은 한 축을 차지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통일 공동 결의안(2013년), 이산가족 상봉 촉구 결의안(2014년), 한국전쟁 종전 결의안(2015년) 등을 발의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앞장서서 지지해 체결에 이바지했다. 지난 2003년에는 지한파 의원 모임인 코리아코커스 창설을 주도하며 초대 의장을 지냈다.

그는 2021년 백선엽 한미동맹상 수상 당시 등 여러 인터뷰에서 “(한국전쟁 때) 부상을 입고 한반도를 떠났을 때는 악몽과도 같았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기에 한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미국의 7번째 교역 파트너이자 국제적 거인으로 부상한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항상 내 마음속에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며 “남북 간 평화를 촉진하면서 우리 두 나라(한미)가 더 가까워지고, 내 평생에 분단된 한반도가 통일되길 소망한다”고도 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