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계가 총선 1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14년 만에 정권을 탈환한 중도좌파 성향 집권 노동당과 키어 스타머 총리는 재정 위기 속 복지예산 삭감 등을 추진하며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 제1야당인 중도우파 보수당도 여전히 총선 참패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각 당에선 벌써부터 내홍 조짐이 보이고 있다.
노동당, 부총리 증세 촉구 메모 유출 두고 ‘시끌’
노동당은 최근 앤절라 레이너 부총리 겸 주택지역사회부 장관이 레이철 리브스 재무장관을 향해 증세를 촉구한 메모가 유출되며 시끄러운 상황이다.
20일(현지시간)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레이너 부총리는 올해 봄 재정 계획 발표 직전 리브스 장관에게 연간 증세를 통해 30억~40억 파운드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 메모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메모에는 은행의 법인세율 인상, 부유층 배당금 세율 인상 등 구체적 제안도 담겼다.
하지만 리브스 장관이 실제 내놓은 계획에서 증세는 빠지고 장애인 지원금 등 복지를 대규모로 축소하는 방안이 주를 이뤘다.
이에 해당 메모가 유출된 것을 두고 배후에 레이너 부총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인기 없는 공공지출 감축 정책을 주장한 지도부와 차별화해 차기 총리 도전에 나서려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실제 레이너 부총리는 당내 우파로 분류되는 리브스 장관이나 스타머 총리와 달리 복지나 증세 등을 강조하는 당내 좌파로 분류된다.
한 노동당 인사는 더타임스에 “레이너는 공개적으로는 충성스럽지만 인기 없는 정책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며 “스타머가 다음 선거 전까지 상황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상황은 변할 수 있다. 레이너도 좌파 대표로 자신을 내세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인사도 “레이너는 당내 지지가 높다. 당 대표 경선이 열린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총리가 레이너의 통찰력을 활용하지 않은 것은 실수다. 그의 제안은 노동당 유권자가 노동당 정부에 기대했던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레이너 부총리는 논란이 커지자 당 대표 출마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25일 스카이뉴스에 “노동당 지도자가 되고 싶지 않다”며 “메모 유출의 배후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수당, 대표 몰아내고 존슨 전 총리 복귀 움직임
보수당도 극우 영국개혁당에게도 지지율 밀리며 지난해 총선 참패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낮은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자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복귀설도 흘러나온다. 존슨 전 총리는 브렉시트 선거와 2019년 총선 등을 승리로 이끈 바 있다. 다만 파티게이트 등 각종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은 양날의 검이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25일 현직 국회의원과 전직 장관 등 주요인사 5명이 캐미 배이드녹 대표가 사임해야한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들 중 당내 지도부급 인사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베이드녹 대표가 반 년 만에 리더십 위기에 직면한 것은 보수당 지지율이 영국개혁당에게 10%포인트 이상 격차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달 열린 영국 지방선거에서 보수당은 16개 지방의회와 674석의 의석을 잃었다. 대부분 반사이익은 영국개혁당이 가져갔다. 보수당 주요인사들이 탈당해 영국개혁당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소문도 적지 않다.
이같은 위기 상황 속 차기 당 대표로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거론되고 있다. 그는 최근 스타머 총리의 유럽연합(EU)과의 관계 재설정 추진에 “브뤼셀의 족쇄 찬 절름발이”라고 비난하는 등 정치적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존슨 전 총리는 파티게이트 등 기행으로 논란이 됐지만 보수당 지지층 내 지지는 여전히 높다.
존슨은 현재 출마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보수당 규정상 의원만이 당 대표를 맡을 수 있다. 존슨 측근 인사들은 지난해 총선에서 5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한 8명의 의원 중 한 명이 물러나길 바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혹은 규정을 바꿔 원외 당대표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2019년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존슨을 지지했던 더타임스에서부터 이같은 의견이 나온다. 칼럼니스트인 제니 러셀은 “속이 빈 존슨 같은 사람에게 두 번 속는 것은 어리석인 일”이라고 맹비난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