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서 라면축제 열린다고?’···개최자 누군가 봤더니

입력 2025-05-26 16:09

섬길교회(박경준 목사)는 올해 개척 7년차를 맞은 상가 교회다. 교회가 자리 잡은 곳은 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로7길. 여의도 직장인들이 분주하고 치열하게 일상을 보내는 한복판인 동시에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여의도를 찾는 시민들이 한강공원으로 향하는 길목이다.

면적 2.9㎢에 불과한 섬이지만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로 꼽히며 ‘작지만 큰 섬’으로 불리는 여의도에서 이 교회는 도민(島民)으로서 시민(市民)을 만나는 사역을 펼치고 있었다. 26일 만난 박경준(51) 목사는 “첫 예배 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선교적 교회’를 지향하며 성경 묵상과 나눔, 섬김을 핵심에 뒀다”고 설명했다.

주민보다 근로자 수가 훨씬 많은 여의도의 지역적 특성은 섬길교회 사역에 오롯이 드러난다. 박 목사의 하루는 매일 오전 6시 성도들과 함께 하는 온·오프라인 새벽통독예배(월~토)로 시작한다. 기도 후 짧은 메시지를 전한 뒤 성경을 함께 읽는 방식이다. 7시부턴 직장인 통독예배(월~금)가 이어진다.
박경준(왼쪽 첫 번째) 목사가 지난달 24일 섬길교회에서 LG기독신우회 목요연합예배를 드린 뒤 성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섬길교회 제공

그는 “여의도로 출근하는 직장인 크리스천들의 요청에 대한 응답”이라고 설명했다. 화요일(오전)과 목요일(오후) 주일(오후)에는 통성경학교를 운영하며 성도들이 성경 중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끈다.

박 목사는 수요일(LG전자) 목요일(LG에너지솔루션) 점심마다 교회 인근 회사를 찾아가 신우회 예배를 인도한다.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엔 직장인 성도들이 퇴근길에 들러 함께 찬양할 수 있도록 목요찬양예배를 진행한다. 그는 “산책하기 좋은 날엔 공원에 돗자리를 펴고 신우회 예배를 드리기도 하는데 고된 업무 가운데 영적 쉼을 누리는 성도들의 표정을 보면 절로 기쁨이 샘솟는다”며 웃었다.
서울 섬길교회 성도들이 지난 18일 주일예배 후 상가 앞에서 시민들에게 붕어빵과 팝콘을 나눠 줄 준비를 하고 있다. 섬길교회 제공


교회가 위치한 상가 입구에선 3년째 매주 일요일 오후가 되면, 주말을 맞아 여의도를 찾은 시민들을 위한 감사 축제가 열린다. 성도들은 직접 만든 붕어빵과 팝콘, 음료 등을 나눠주며 환대의 마음을 전한다.

다음 달엔 환대의 장을 교회 앞에서 한강공원으로 넓힌다. 시민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사랑받는 ‘핫 플레이스’ 중 하나인 한강공원 물빛광장에서 20~21일 ‘제1회 한강 라면축제’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어린이 포함 성도 5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공동체가 어떻게 서울을 대표하는 공간에서 라면축제를 열 수 있었을까. 해답은 섬김을 위한 고민과 공동체의 의지에 있었다.
지난해 1월 섬길교회 창립 5주년 기념예배 후 성도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섬길교회 제공

“개척교회가 제한된 재정 안에서 사역을 펼치다보면 한계는 명확합니다. 어느 날 서울시 민간축제 지원사업 공모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저거다 싶었습니다. ‘K푸드’로 각광받는 ‘한강 라면’을 모티브로 공모해 선정이 됐지요. 작은 공동체지만 이웃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혜를 구하다보면 길이 열린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됐어요.”

공모 선정 소식이 알려지면서 생각지 못한 협력과 연대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박 목사의 지인이 근무하는 한 유통업체에선 의미 있는 축제에 동참하고 싶다며 라면 6000개를 후원하기로 했고, LG연합신우회 기독NGO 미션프렌즈(대표 박종호 장로) 등은 행사 진행을 위한 자원봉사를 자청했다.

후원 덕분에 아낄 수 있게 된 재정은 축제를 더 풍성하게 해 줄 문화콘텐츠 마련에 활용됐다. 당일 현장에선 클래식, 재즈, 인디밴드, 국악 공연과 함께 ‘SNS 인증샷’ 이벤트도 열릴 예정이다. NGO부스에선 건강한 문화 확산을 위한 무료 상담 및 코칭, 감사 에너지 측정 이벤트, 가족 방문객들을 위한 어린이 색칠 놀이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박경준(앞줄 오른쪽 첫 번째) 목사가 지난해 4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LG기독신우회 야외 예배를 드린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섬길교회 제공

20일엔 축제 안전 점검을 위해 사전 등록한 여의도 직장인(200명)을 대상으로 점심시간에만 라면을 제공하고 21일엔 누구나 축제를 즐길 수 있다. 박 목사는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에 성도들과 기도하면서 거듭 마음에 새기는 다짐이 있다며 들려줬다.

“라면축제에 십자가가 없으면 어때요. 성경책이 놓여있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늘도 함께 다짐합니다. 시민들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순수하게 섬기자. 우린 비록 작지만 정성껏 이웃을 섬기는 모습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큰 사랑이 전해지게 하자고요(웃음).”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