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했는데’…젠슨 황 “대만에 원전 꼭 필요”

입력 2025-05-26 12:59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19일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5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인공지능(AI) 반도체 업계의 거물인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대만은 반드시 원자력발전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해 대만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대만은 지난 17일 마지막 원전의 가동을 중단하면서 공식 탈원전 국가가 됐지만, 야당들은 정부와 집권 민진당에 탈원전 철회를 압박하고 있다.

대만 자유시보 등에 따르면 젠슨 황 CEO는 지난 24일 대만에서 열린 ‘AI 트렌드 인사이트 서밋’ 연설에서 “향후 10년간 AI 산업의 가장 큰 과제는 에너지 문제”라며 대만 정부에 적극적인 에너지 정책을 주문했다.

특히 “풍력, 태양광, 원자력 등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면서 “대만은 원전에 반드시 투자해야 한다. 에너지가 사회적 낙인이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젠슨 황 CEO는 대만에서 태어난 대만계 미국인으로서 세계적 기업가로 성공한 만큼 대만에서도 영향력이 크다.

국민당은 25일 성명을 내고 “산업계, 학계, 국제사회의 잇따른 경고에도 불구하고 라이칭더 총통은 듣기 좋은 말만 들을 뿐, 근본적 해법인 원전 재가동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미국과 주요 국가들이 원전을 재가동하고 원자로 수명을 연장하는 이유는 에너지 안보의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라이 총통의 행보는 국내 경제 발전을 도외시하고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중대한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제2야당인 민중당 의원단도 이날 “대만은 세계 반도체의 중심이고 해마다 전력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엔비디아도 타이베이 시내 과학기술단지 입주를 결정한 지금이 대만의 AI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릴 기회”라며 “민진당의 탈원전 정책은 이성과 과학, 실용에 위배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만은 총 6기의 원자로를 가동했지만, 민진당 출신인 차이잉원 전 총통의 공약으로 2016년부터 탈원전을 추진했다. 40년 수명을 다한 원자로의 가동을 차례대로 중단하는 방식으로 마지막 원자로인 마안산원전 2호기의 가동을 지난 17일 멈췄다. 대만의 원자력 발전량은 0이 됐다.

대만이 원전을 재가동하려면 법을 개정해 40년으로 정해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거나 공사가 중단된 룽먼원전 1·2호기를 완공해야 한다. 국민당은 원전 수명 연장 법안과 국민투표 등으로 압박하고 있지만, 정부와 민진당의 탈원전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지난 20일 탈원전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원전 재가동에 필요한 세 가지 원칙으로 안전 우려 해소, 핵폐기물 처리문제 해결, 사회적 공감대 확보를 제시했다. 라이 총통은 “이러한 원칙들을 바탕으로, 기후변화, 지정학적 위협, 국제 경제 및 무역 질서의 재편이라는 중대한 도전에 책임감 있고 신중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