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내리는 판사에 대한 인신공격을 이어가면서 연방 판사들이 자체 경호 조직을 운영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행정부와 입법부까지 장악한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부를 비난하면 트럼프 극렬 지지층이 나서서 판사를 위협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와 사법부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일부 연방 판사들이 자체 무장 경호팀을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해당 구상은 3월 초 약 50명의 판사가 사법부 정책 결정 기구인 ‘사법회의’의 비공개회의에서 처음 제기됐다. 판사들은 트럼프 취임 이후 자신의 정책에 반하는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을 공개 비난하면서 생긴 위협에 대해 논의했다.
트럼프의 판사 ‘좌표 찍기’ 대표 사례는 제임스 보스버그 연방 판사다. 트럼프는 지난 3월 보스버그가 베네수엘라 이민자 추방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제동을 걸자, 트루스소셜에 보스버그의 실명을 언급하며 탄핵해야 한다는 글을 수차례 올렸다.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이 이례적인 성명을 내고 트럼프의 주장을 반박했지만 트럼프와 지지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트럼프의 최측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등도 법원이 정부효율부(DOGE)의 일부 조치를 위법으로 판결하자 ‘즉각적인 사법부 탄핵’을 촉구하기도 했다.
최근 수십 명의 판사는 자신과 가족 친지 앞으로 익명의 피자 배달을 받기도 했다. 주문도 하지 않은 피자를 전달받은 판사들은 대부분 반(反)이민 등 트럼프의 주요 정책에 대한 소송을 맡았다. 한 판사는 “그들은 당신이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다는 점을 알리려는 것이고, 폭력과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트럼프가 출생시민권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의 효력을 정지하는 판결을 내린 뒤 위협을 받았고, 특수기동대(SWAT)가 출동하는 일도 벌어졌다.
연방 대법관도 예외는 아니다.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트럼프가 해체한 국제개발처(USAID)의 계약과 관련해 행정부가 USAID 계약업자들에게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는 하급심 판단을 확정했다. 이후 배럿 대법관의 자매가 폭탄 위협의 표적이 됐다.
미국 대법원은 자체 전담 경찰을 갖고 있지만, 일반 연방 판사들은 팸 본디 법무장관이 지휘하는 연방보안청(USMS)의 보호를 받는다. 연방보안청이 트럼프 행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에 맞서는 판결을 내린 판사들은 위협과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런 우려는 대법원장에게도 전달됐다.
보안 인력 부족도 문제다. 판사에 대한 위협이 가장 많은 워싱턴DC 법원의 경우, 50명의 보안관이 162명의 판사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민주당은 판사 보호 강화 법안을 발의했다. 코리 부커 상원의원은 지난 22일 대법원장과 사법회의가 연방보안청장을 임명해 스스로 보안을 책임지는 법안을 발의했다. 부커 의원은 법안 발의 배경에 대해 “트럼프가 말과 행동을 통해 법과 법원 명령, 판사의 안전과 제도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