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중 베테랑, 젠지 ‘룰러’ 박재혁은 곧 LCK 데뷔 9주년을 맞는다. 23일 DRX전을 캐리해 시즌 첫 플레이어 오브 더 매치(POM)으로 선정되고, LCK 통산 400승까지 기록하는 등 겹경사를 맞은 그를 만나 9년간 열심히 달려온 소회를 들어봤다.
젠지는 이날 서울 종로구 LCK 아레나에서 열린 2025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정규 시즌 2라운드 경기에서 DRX에 세트스코어 2대 0으로 이겼다. 젠지는 이로써 정규 시즌 개막 후 16연승을 기록했다. 다음은 경기 후 박재혁과 진행한 짧은 일문일답.
-LCK 데뷔 9주년을 축하합니다.
“LCK 데뷔 9주년의 날에 통산 400승까지 기록해서 정말 기뻐요. 제 기념일을 축하하고자 에이전시(슈퍼전트)에서 마카롱과 간식, 제 반려견 샤넬이가 그려진 티셔츠를 팬분들께 드릴 선물로 준비해주셨어요. 이런 선물을 준비해주신 서경종 대표님과 부모님께 감사드려요. 아, 한 팬분께서도 2016년부터 올해까지 제 선수 생활을 그림으로 표현해서 스티커를 제작해주셨어요. 제 9주년을 축하해주신 팬분들께도 감사해요. 팬분들이 많아서 기쁜 하루예요.”
-9년간 늘 팬 서비스가 좋은 선수로 꼽혀왔습니다.
“2019년 서머 시즌이 계기가 됐어요. 당시 저는 심각한 번 아웃 증상을 겪던 상태였어요. 그때는 제가 겪는 문제가 번 아웃이라는 것도 몰랐지만요. 화면은 안 보이고 어지럽고 내 캐릭터의 위치도 못 찾겠고….
정규 리그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시즌이 그대로 끝났는데 ‘아, 플레이오프에 못 나가서 다행이다. 너무 힘들었는데’하고 안도감이 들더라고요. 그때 경기장에서 그런 저도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을 보고는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팬분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고 감사한 분들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죠.”
-오늘 POM으로도 선정됐습니다. 2세트 활약이 결정적이었는데요.
“초반에 상체에서 손해를 보긴 했지만 대신 바텀이 유리했어요. 상대가 저를 물 수단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 나보리가 3코어로 뜬 순간 이 게임은 내가 집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4코어로 도미닉이 떴을 땐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했고요.”
-2016년, 이렇게 오래 선수 생활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지요.
“아니요. 제가 데뷔했을 당시에는 25세만 돼도 선수 생활을 하기엔 나이가 많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선수들 사이에서도요. 그리고 그때는 겁도 많은 성격이어서 걱정이 많았죠. 돌이켜보면 재밌어요. 눈 깜짝할 새 9주년이 됐고, 저는 19세에서 28세가 됐어요. 정말 많은 대회에 나가봤고요. 그리고 그땐 인터뷰도 정말 못했거든요.(웃음)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던 제가 이렇게 고인 물이 되다니….”
-지난 9년을 되돌아보며…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를 꼽는다면요.
“딱 하루를 꼽는다면 2023년 봄의 어느 날이요. 런던에서 MSI를 우승하고 제가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기사로 접했던 그 순간. 그때가 제 프로 인생에서 가장 뜻깊었던 날이에요. 저는 운이 정말 좋아서 국가대표가 됐잖아요. 2022년엔 LCK에만 집중하기 위해 국가대표 상비군도 포기했는데 대회가 코로나19 여파로 1년 밀렸죠. 2023년에도 젠지를 떠나 LPL로 가면서 국가대표가 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리그 우승, MSI 우승까지 하면서 끝내 태극마크를 달았어요.
2023 MSI 우승은 제게 정말 큰 의미를 지녀요. 오랜만의 국제대회 우승이기도 하지만, ‘룰러’라는 선수의 가치를 다시 전 세계의 LoL e스포츠 팬들에게 알린 계기가 되기도 했거든요. 국가대표가 됐을 때 제 충만했던 자신감은 지금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예요. ‘내가 금메달을 가져다줄게’라는 자신감. 그래서 우승 당시보다 대표로 선정됐을 때가 더 기억에 남아요.”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