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or보기]쿼드러플 극복하고 컷 통과한 최경주의 메시지…“인내하고 최선을 다한 뒤 기다려라”

입력 2025-05-23 06:00
지난 18일 제주도 서귀포시 핀크스CC에서 끝난 KPGA투어 SK텔레콤 오픈에서 우승한 엄재웅에게 트로피를 전달하며 격려하고 있는 최경주(오른쪽). KPGA

기상 악화로 골프대회가 파행 운영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지난 18일 막을 내린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SK텔레콤 오픈도 그랬다. 당초 이 대회는 4라운드로 우승자를 가릴 예정이었으나 3라운드 54홀 경기로 챔피언이 결정됐다.

그것도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마무리될 수 있었다. 15일과 16일로 예정됐던 1, 2라운드가 악천후로 열리지 못해 자칫 대회가 취소될 뻔한 위기였다. 다행히 기상이 호전돼 남은 이틀간 54홀 경기를 치러 경기는 마칠 수 있었다.

대회 마지막 날에 가서야 컷이 결정됐을 만큼 출전 선수를 비롯, 대회 관계자 모두가 힘든 한 주를 보냈다. 연장 승부 끝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엄재웅(34·우성종합건설)도 대회 최종일인 18일 하루에만 총 37홀을 도는 강행군을 펼쳤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은 탓에 올해 대회에서는 작년 최경주(55·SK텔레콤)의 기적과도 같은 우승 드라마는 없었다. 그렇다고 엄재웅의 1년 7개월 만의 통산 3승이 빛나지 않은 건 아니다. 축하 받아 마땅하다.

그런 가운데 유의미한 기록도 있었다. 주인공은 디펜딩 챔피언 최경주다. 그는 이번 대회를 공동 33위(최종 합계 3언더파 210타)로 마쳤다. 중요한 것은 그가 받아 쥔 성적표가 아니다. 그가 대회 최다인 22번째 컷 통과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 과정은 극적이었다. 17일 1라운드 4번 홀(파5)까지 1타를 줄이며 순항했다. 하지만 5번 홀(파3)에서 최악의 참사를 맛봤다. 두 차례나 연거푸 티샷이 그린 앞 연못에 빠져 4타를 잃는 쿼드러플 보기를 범했다. 그리고 이어진 6번 홀(파4)에서 한 타를 더 잃었다.

복구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최경주는 최경주였다. 그는 남은 12개 홀에서 더 이상 타수를 잃지 않고 3타를 줄여 1오버파로 1라운드를 마쳤다. 그리고 곧장 이어진 2라운드에서 일몰로 경기가 중단된 16번 홀까지 3언더파를 기록했다. 다음날 속개된 3개홀 잔여 경기에서 모두 파를 잡아 중간합계 2언더파 140타로 기어이 컷을 통과했다. 이번 대회 컷 기준타수는 1언더파 141타였다.
지난 18일 제주도 서귀포시 핀크스CC에서 끝난 KPGA투어 SK텔레콤 오픈에 출전한 최경주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KPGA

그는 “국내외 통틀어 공식 경기 한 라운드 한 홀에서 연거푸 볼을 페널티 구역에 빠트린 건 처음이었다”라며 “제5의 메이저대회인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개최지인 TPC소그래스의 악명 높은 17번 홀(파3)에서도 지금껏 공식 경기 2차례, 연습 라운드 때 2차례 등 페널티 구역에 볼이 빠진 건 총 4차례뿐”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동반자인 박상현(42·동아제약)과 배용준(24·CJ)도 같은 홀에서 각각 2차례와 1차례씩 티샷이 페널티 구역에 빠져 박상현은 트리플 보기, 배용준은 보기를 범했다.

최경주는 “전적으로 바람 계산을 잘못한 내 실수였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라며 “더 심각한 것은 다음 홀 보기였다. 순간적으로 ‘큰 일 났구나’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더 집중하게 되면서 타수를 줄일 수 있었다”고 긴박했던 순간을 뒤돌아보았다.

2개홀에서 5타를 잃으면 십중팔구는 멘붕에 빠져 플레이를 순조롭게 이어가기가 힘들다. 하지만 최경주는 달랐다. 그리고 그 과정은 오롯이 아들뻘, 조카뻘 후배들에게 강한 메시지로 전달됐다.

최경주는 지금껏 선수생활을 하면서 몸 컨디션이 극도로 좋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곤 중도에 경기를 포기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자신의 실수로 스코어가 좋지 않은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최경주는 “이번 대회 5번 홀처럼 경기가 잘 안 풀릴 때가 종종 있다. 물론 화가 난다. 하지만 그 심리 상태가 표정으로 나오면 안된다”라며 “힘들더라도 내 스윙을 믿고 지나간 실수는 빨리 잊는 게 좋다. 요즘 젊은 선수들이 분을 참지 못하고 코스에서 볼썽 사나운 행동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는데 결코 도움이 안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려는 습성이 몸에 밴 것이다. 그의 그런 행동은 동반자는 말할 것도 없고 경기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

1라운드 4오버파 부진을 2라운드 4언더파로 만회하는 데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1타 차이로 컷 통과에 실패한 1, 2라운드 동반자 박상현은 “작년 대회 때 연장전에서도 그렇고 올해도 프로님의 경기를 보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라며 “경기 몰입도는 말할 것도 없고 관리 여하에 따라 경쟁력은 달라진다는 걸 다시금 확인한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동반 라운드 의미를 부여했다.

최경주는 코스 내에서 뿐만 아니라 코스 밖에서도 후배들을 위한 멘토링을 마다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이번 대회 출전에 앞서 미국프로골프(PGA) 콘페리투어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이승택(29·경희)을 미국에서 따로 만나 격려하기도 했다.

최경주는 “(이)승택이가 정말 잘하고 있다. 잘 모르는 선수였는데 함께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눠 봤더니 PGA투어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가진 훌륭한 후배였다”라며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계속 전진하라고 조언했다. 지키려는 순간 퇴보하는 게 골프라는 걸 승택이가 마음에 깊이 새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제주도 서귀포시 핀크스CC에서 개막한 KPGA투어 SK텔레콤 오픈에 출전한 최경주가 후배 박상현(왼쪽), 장유빈(오른쪽)과 선전을 다짐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KPGA

현재 콘페리투어 포인트 7위에 자리한 이승택은 이변이 없는한 상위 20위까지 주는 내년 시즌 PGA투어 카드 획득이 유력시 되고 있다.

최경주는 오는 7월17일 북아일랜드 포트러쉬의 로얄 포트러쉬 골프클럽에서 개막하는 디오픈에 출전한다. 작년 시니어투어 메이저대회 더 시니어 오픈 챔피언십 우승자 자격이다. PGA투어 통산 499번째 대회 출전이다.

그는 “통산 500번째 출전까지 딱 한 차례만 남았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지난 4월에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열린 PGA투어 코랄레스 푼타카나 챔피언십에 출전 가능성이 높은 대기 1번이어서 가서 기다렸다 헛걸음 치고 돌아왔다”라며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출전 가능성이 높은 대회는 계속 두드릴 생각이다”고 500회 출전을 향한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최경주는 오는 9월에 경기도 여주 페럼클럽에서 열리는 KPGA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하기 위해 또 다시 국내 골프팬들을 만나게 된다. 4개월 뒤 여정에서 사랑하는 후배들의 성장을 위해 그가 남길 ‘메시지’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