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또 ‘윽박’ 정상회담…남아공 대통령에게 “백인 탄압” 공개 추궁

입력 2025-05-22 05:58 수정 2025-05-22 07:0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도중 남아공에서 백인 학살이 진행 중이라고 주장하며 관련 내용을 담은 문서를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남아공 백인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고 압박했다. 트럼프는 정상회담 중 백인 탄압 증거라며 영상을 틀기도 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회담만큼 고성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내내 긴장이 흘렀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라마포사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진위 논란이 있는 ‘백인 농부 집단 살해’ 문제를 꺼내 들었다. 트럼프는 “일반적으로 (집단 살해 피해자는) 백인 농부들”이라며 “그 농부들은 흑인이 아닌 백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당신(라마포사 대통령)은 그들이 땅을 빼앗도록 허용하고, 그들은 땅을 빼앗을 때 백인 농부를 살해한다. 그들이 백인 농부를 살해해도 그들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는 이어 “조명을 꺼 달라”고 말한 뒤 기습적으로 백인 농부 학살 의혹 영상을 틀도록 했다. 해당 영상에는 남아공의 한 극좌 정치인이 “보어(백인 농부)를 죽여라”라는 가사가 포함된 노래를 부르는 장면 등이 포함돼 있다. 해당 인물은 남아공 야당 지도자인 줄리어스 말레마로, 남아공 집권 연립 정부 소속이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영상을 보며 “여기가 바로 매장지”라며 “1000명이 넘는 백인 농부들의 매장돼 있고, 차량들이 일요일 아침에 애도를 표하기 위해 줄지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라마포사 대통령은 “저기가 어디라는 말씀을 들었느냐? 나는 본 적이 없다”고 반문했고 트럼프는 “남아공에 있다. 공무원인 사람들이 백인 농부를 죽이고 땅을 뺏으라고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라마포사의 말을 중간에 끊기도 했다.

라마포사는 트럼프의 주장에 대해 “우리는 그런 행동에 전적으로 반대한다”며 “우리나라에는 범죄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범죄 행위로 사망하는 사람들은 백인뿐만 아니라 대다수가 흑인”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남아공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 목소리 중 일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친구”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백인 희생자 관련 기사를 출력한 문서를 라마포사에게 건네기도 했다. 백악관도 정상회담 뒤 이날 회담 때 상영했던 동영상을 엑스의 백악관 공식 계정에 ‘조금 전 집무실에서 선보였던 영상:남아공의 박해 증거’라는 제목으로 그대로 게시했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남아공의 백인 농부 집단 학살 주장은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내용”이라고 했다. AP통신은 “남아공에서는 모든 인종의 농부가 폭력적인 주택 침입의 피해자가 되고 있지만, 백인이 인종 때문에 표적이 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전했다.

이날 회담은 초반부까지만 해도 골프와 외교 문제 등으로 화기애애했지만 백인 탄압 문제가 불거지면서 차갑게 얼어붙었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와의 회담처럼 모욕적 발언을 하진 않았지만 상대국 정상에게 추궁하듯 발언을 이어가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라마포사는 골프를 좋아하는 트럼프를 의식해 남아공의 전설적인 골퍼 어니 엘스를 대표단으로 배석시키기도 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트럼프의 이날 주장은 남아공에서 정부가 백인 농부에 대한 공격을 허용하고 있다는 미국 보수 진영의 의혹 제기를 되풀이한 것이다. 난민 수용을 중단했던 트럼프는 최근 남아공 백인 49명만 예외적으로 난민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날 회담에는 남아공 출신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도 배석했다. 머스크도 그동안 남아공의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이 백인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해왔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