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미와 / 아이사레루 타/메 우마레타/ 키미노 쇼 가이와/ 아이데 미치테 이루.”
21일 일본 나가사키현 브릭홀에서 열린 제5회 한일문화교류회가 한국 CCM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의 합창으로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한일연합선교회(이사장 정성진 목사)가 창립 20주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행사에서 양국 500여명은 조명을 켠 스마트폰을 들고 찬양하며 서로를 축복했다.
선교회는 그동안 역사적 상처로 얼룩진 양국 간 화해와 협력의 모델을 제시하는 다양한 사역을 펼쳐왔다. 이번 문화교류회는 예배와 강연, 문화 행사로 진행됐는데 특히 문화 공연은 양국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잇는 역할을 했다.
거룩한빛광성교회 난타팀의 열정적인 공연에 이어 나가사키 남성합창단과 여성합창단 오르텐시아가 합창 공연으로 화답했다. 테너 윤정수는 일본의 부흥을 염원하며 작곡한 나가사키 헌정곡 ‘순교의 길’을 선보여 감동을 더 했다.
패전국의 책임은 무한 책임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강연에서 “우애는 과거의 이념이 아니라 지금 세계에 가장 필요한 가치”라며 “자신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듯 타인의 자유도 존중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평화”라고 역설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가 사할린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을 외면하지 못했던 사연을 소개하며 “사할린에서 눈물로 ‘우리를 데려가 달라’던 조선인들의 눈빛을 아버지께서 평생 잊지 못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 피해에 대한 패전국의 책임은 무한 책임”이라며 “정해진 배상을 다 했다고 해서 책임을 다했다고 패전국 측에서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아시아공동체연구소는 선교회에 감사패를 전했으며, 나가사키현 관광연맹은 선교회 이사장 정성진 목사와 정재원 본부장, 김인태 넷투재팬 대표에 각각 감사패를 전달했다.
주중 대사 등을 지낸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은 “한·일 간의 민감한 문제에 관해 한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지지하는 행동을 보인 하토야마 전 총리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크리스천은 양국이 더는 싸우지 않고 서로 돕고 협력해 각자의 나라를 발전시키고 국민 행복을 증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는 일본 복음화를 도와야 하며 일본이 한국의 도움을 기쁘게 받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럴 때 일본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세계 각국의 문화 및 순교 이야기 등의 복음 콘텐츠를 제작하는 WGN(World Good News) 이사장으로 취임한 임현수 캐나다 큰빛교회 원로목사는 ‘일본 통하여 북한으로’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일본이 북한 복음화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라는 비전을 나눴다.
임 이사장은 일본교회의 열정적인 신앙과 북한에 관한 관심을 강조하며 최근 자신의 책이 일본어로 번역됐을 때 기독교 부문 1위를 차지한 경험을 나누었다. 그는 “일본뿐 아니라 몽골 독일 미국 중국 등 전 세계 교회들이 북한 선교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이 자리에 있는 500여명의 증인이 살아있는 동안 통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순교의 땅 나가사키, 한국교회와 손잡다
선교회는 그동안 기독교 탄압으로 30만 명 이상이 순교한 일본의 순교지를 개발해 한국교회에 소개하는 사역을 펼쳤으며,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나가사키는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선교회는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나가사키 순교지 탐방’을 진행했다. 나가사키는 한때 ‘동방의 작은 로마’로 불릴 만큼 기독교의 뿌리가 깊은 도시이자 수많은 크리스천이 신앙 때문에 생명을 잃은 순교의 땅이다. 탐방 일정에는 히라도의 마츠라사료박물관과 야이자 사적공원, 오무라의 스즈타 감옥터, 나가사키의 니시자카언덕 26인 순교비 등이 포함됐다.
걸어서 순교한 26명의 증인
지난 20일 순례객들은 히가시소노기의 ‘일본 26성인 동선장 터’를 방문해 일본 최초의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7년 금교령을 내렸지만 기독교 교세가 수그러들지 않자 당시 수도였던 교토와 오사카에서 선교사 24명과 신자를 체포해 나가사키까지 걸어오게 한 뒤 처형했다. 이들에 자발적으로 2명이 더해져 26명이 니시자카 언덕에서 순교했다.
26명의 성인은 1597년 1월 9일 교토에서 출발해 걸어서 오사카 인근 사카이를 지나 약 한 달에 걸쳐 나가사키로 압송된 것으로 전해진다. 순례팀을 이끈 정희민 가이드는 “26명 성인 가운데 십 대 아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예수를 안 믿는다고 부정하면 풀어주겠다’는 회유에도 불구하고 담담히 순교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김 전 장관은 “460여 년 전 일본에서 신앙 때문에 순교한 이들의 죽음을 매년 수만 명의 한국 크리스천들이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다. 이들을 기억하고 위로하길 바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진다”며 “이 사실 자체가 스토리”라고 강조했다.
좁은 감옥, 신앙의 불꽃
나가사키현 오무라의 ‘스즈타 감옥터’에 모인 순례팀원들은 성찬식에 참여했다. 16세기 후반 오무라 영주인 스마타다가 신앙을 갖게 됨에 따라 이 지역 모두 기독교인이 되는 등 오무라 영지에서는 기독교가 크게 융성했으나 에도시대가 시작되면서 기독교 금지가 엄격해졌다.
20㎡(6평)의 스즈타 감옥터는 많게는 33명까지 수용됐으며 눕지 못하는 것은 물론 운신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이 감옥에 갇힌 사람 중 3명은 옥중에서 순교했다. 감옥터에는 선교회의 요청으로 세워진 하얀색의 대형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순례객들은 찬송가 ‘예수 나를 위하여’를 부르며 십자가 사랑과 순교자들의 신앙을 깊이 묵상했다. 임 이사장이 성찬식을 인도했으며 곽승현 거룩한빛광성교회 위임목사와 유노하라 히로시 나가사키인터내셔널교회 목사는 순례객들에게 성찬의 잔을 나눴다.
임 이사장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채찍에 맞으시고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새롭게 됐다”며 “주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 새롭게 결단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장상호 청주 서원교회 목사는 “모진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선택하며 생명을 바친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큰 감동과 도전을 받았다. ‘내가 그 입장이 되면 어떤 선택을 할까’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나가사키(일본)=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