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되지 않는 나라 ” “국민화합”…미국에서 투표한 재외국민의 목소리

입력 2025-05-21 06:05 수정 2025-05-21 07:10
미국 워싱턴DC인근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코리안 커뮤니티센터에 마련된 재외국민 투표소에서 20일(현지시간)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분열되지 않는 나라를 위해 투표했습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의 재외국민 투표소 앞. 오전 10시쯤 페어팩스에서 딸과 함께 투표장을 찾은 김선희(55)씨는 “싸우지 않는 정치, 나뉘지 않는 나라를 원한다”며 국민 통합을 기대했다. 그는 지난해 비상계엄을 두고 “바깥에서 보기에 너무나 창피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DC인근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코리안 커뮤니티센터에 마련된 재외국민 투표소에서 20일(현지시간)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이날부터 제21대 대통령 재외국민 투표가 시작됐다. 한국에서 선거전이 절정에 가운데 미국에서는 이미 표심을 정한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시작했다. 주미대사관이 담당하는 투표소는 알렉산드리아의 코리안커뮤니티센터에 마련됐다. 워싱턴DC와 인근 버지니아주, 웨스트버지니아주, 메릴랜드주 등지에 사는 유권자들의 발길이 이날 오전 일찍부터 이어졌다.

투표소 표정은 한국의 여느 투표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전 일찍부터 하나둘 모여드는 유권자들을 선거 참관인과 감독위원들이 맞이하며 신분을 확인하고, 투표 절차를 안내했다.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정치적 격변 탓에 일찌감치 마음을 정하고 지지 후보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유권자가 많았다.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차로 4시간을 운전해왔다는 성진옥(47)씨는 “계엄 이후 5~6개월 동안 화가 너무 나서 뉴스를 내내 보고 있다”며 “아이들에게 한국이 자랑스러운 나라라고 말해왔는데 의심하지 않도록 한국의 위상을 다시 세웠으면 한다. 더 좋은 나라, 안정적인 나라가 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버지니아주 윌리엄스버그에 온 박규리(34)씨는 “원래도 진보 성향이지만, 이번엔 보수 정당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투표는) 쉬운 결정이었다”며 “외교·경제 현안이 많이 쌓여 있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관세 문제 등도 손대지 못한 것을 새 대통령이 잘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에서 온 박모(80)씨는 “원래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 계엄이 왜 일어났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야당이) 사사건건 발목 잡은 것 때문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 임기는 조정하고, 5년 단임제도 바꿔야 한다”며 현재의 대통령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워싱턴DC인근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코리안 커뮤니티센터에 마련된 재외국민 투표소에서 20일(현지시간)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유권자들은 화합과 미래를 말했다. 버지니아주 센터빌에서 온 박채근(66)씨는 “지금은 너무 극과 극의 대결이다. 독재 시절에도 이렇게 국민이 극과 극으로 나뉘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박씨는 “의류업을 하는데 한국의 경제 상황이나 한국을 바라보는 인식이 비즈니스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새 정부는 국민 화합에 신경을 써 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미국에 1년간 체류 중인 민미라(53)씨는 남편과 함께 투표했다. 다자녀 엄마인 민씨는 “책임감 있고 비전으로 준비돼 있다고 생각한 후보에게 투표했다”며 “교육과 출생률 등 미래를 준비하는 대통령, 우리 아이들이 살아야 할 세상을 준비하는 정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파견된 하언우 재외선거관은 “궐위 선거인 탓에 유권자 등록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지만, 예년 선거와 비슷하게 유권자 등록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적극적 투표 의향층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조현동 주미대사 부부가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알렉산드리아 소재 코리안 커뮤니티센터에 마련된 재외국민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조현동 주미대사도 이날 오전 9시 이곳을 찾아 투표했다. 조 대사는 투표를 마친 뒤 “재외투표는 우리 재외동포들의 의견이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한 분도 빠짐없이 투표에 참여해주시기를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조 대사는 대선 이후 한미관계에 대한 질문에 “한미동맹 관계는 대한민국의 외교·안보·경제 등 모든 분야의 국가이익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외교 관계라 생각한다”며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런 한미동맹이 굳건히 유지되고 더욱 발전되기를 기대하고 그렇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지역의 재외국민 투표는 주미대사관이 있는 워싱턴DC와 뉴욕, 로스앤젤레스(LA),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등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25일까지 진행된다. 재외투표 유권자에는 현지 영주권자와 일시 체류자 등이 포함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미국 내 등록 유권자는 5만1885명으로 집계됐다. 재외국민의 투표지는 외교 행낭을 통해 국내로 들어와 정당 추천 참관인이 입회한 가운데 등기 우편으로 시·군·구 선관위에 보내진 뒤 선거일에 함께 개표한다.

알렉산드리아(버지니아)=글 ·사진 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