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발레의 전설’ 러시아 안무가 유리 그리그로비치 별세

입력 2025-05-20 17:32 수정 2025-05-21 00:17
러시아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지난 2010년 국립발레단 ‘라이몬다’ 안무를 위해 내한했을 때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세기 러시아 발레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98세로 별세했다. 타스 통신 등 러시아 언론은 구소련 발레 발전에 기여한 그리고로비치가 세상을 떴다고 일제히 전했다.

발레 팬이라면 한번은 이름을 들어보았을 그리고로비치는 마린스키 발레단과 함께 러시아 양대 발레단인 볼쇼이 발레단에서 1964년부터 1995년까지 30년간 예술감독을 역임하며 수많은 작품을 안무했다. 한국 국립발레단의 레퍼토리 가운데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스파르타쿠스’ ‘라바야데르’도 그가 안무한 것이다.

1927년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레닌그라드 발레학교(지금의 바가노바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뒤 1946년 키로프 발레단(지금의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했다. 키가 작은 그는 무용수로서 1962년까지 캐릭터 댄스를 담당했다. 무용수로 활동하는 한편 안무에 관심을 보인 그는 1956년 바가노바 아카데미 학생들을 위해 처음 만든 작품이 호평을 받으면서 안무가로 주목받았다. 특히 1957년 프로코피예프 음악에 맞춰 안무한 첫 전막 발레 ‘석화’가 찬사를 받으면서 구소련 발레의 총아로 떠올랐다. 이어 1961년 키로프 발레단 상임 안무가가 된 그는 같은 해 ‘사랑의 전설’도 성공을 거뒀다.

러시아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지난 2010년 국립발레단 ‘라이몬다’ 안무를 위해 내한했을 때 발레리나 김주원과 반갑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64년 모스크바의 볼쇼이 발레단으로 옮겨간 그는 1995년까지 30년간 발레 마스터(수석 안무가)를 맡았으며 1988년부터 예술감독도 겸했다. ‘이반 뇌제’, ‘호두까기 인형’, ‘스파르타쿠스’, ‘로미오와 줄리엣’,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을 안무 또는 재안무하며 볼쇼이극장의 명성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구소련 붕괴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개방) 정책의 영향으로 그에 대한 볼쇼이 발레단 내의 반발도 거세졌다. 이에 따라 1995년 볼쇼이 발레단을 떠나 크라스노다르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발레단을 만들었다.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은 1997년 그에게 작품 요청을 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당시 국립극장 전속단체였던 국립발레단이 해외 안무가와 크리에이티브팀까지 데려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 재단법인으로 바뀌며 운영에 자율성이 생기자 또다시 그에게 연락을 취했고, 마침내 그가 마음을 바꿔 내한했다.

2001년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내한해 국립발레단 단원들에게 ‘스파르타쿠스’를 직접 지도하는 모습. 국립발레단 제공

그의 지도로 국립발레단은 2000년 ‘호두까기인형’에 이어 이듬해 ‘백조의 호수’와 ‘스파르타쿠스’를 차례로 올렸다. 국립발레단은 세 작품을 소화하며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최태지 전 단장은 “국립발레단이 창단 이후 많은 발전을 해 왔지만, 레퍼토리 축적과 무용수의 성장 면에서 유리 선생님보다 더 큰 기여를 한 분은 없다”면서 “그는 처음 세 작품을 올리는 동안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몇 달씩 거주하면서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을 직접 가르쳤다”고 회고했다.

국립발레단의 극진한 대우에 감동한 그는 ‘호두까기인형’ ‘백조의 호수’ ‘스파르타쿠스’의 국내 공연에선 저작권료도 받지 않았다. 유명 안무가의 작품을 라이선스로 가져오려면 3년 단위로 계약하고 공연 때마다 만만치 않은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게 관행이다. 이후 국립발레단은 그가 안무한 ‘라바야데르’ ‘로미오와 줄리엣’ ‘라이몬다’도 무대에 올렸는데, 이들 작품도 국내 공연에선 저작권료를 면제받았다. 최태지 전 단장은 “유리 선생님은 고전 발레의 현대화에서 탁월한 성과를 남겼다. 그의 작품을 6개나 받은 것은 러시아 외의 발레단에선 국립발레단이 가장 많다”면서 “유리 선생님은 국립발레단을 모스크바에 초청해 볼쇼이 발레단과 합동공연을 주선하는 등 단원들의 자신감을 북돋우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지난 2016년 국립발레단 ‘스파르타쿠스’ 공연이 끝난 뒤 단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국립발레단

볼쇼이 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활약했던 부인 나탈리아 베스메르트노바가 2008년 별세한 후 그는 볼쇼이 발레단 발레 마스터 겸 안무가로 복귀했다. 같은 해 국립발레단은 그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올리면서 베스메르트노바에 헌정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1992년 ‘발레계의 아카데미상’으로 알려진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의 창설을 주도했다. 그리고 2023년까지 대표 겸 매년 심사위원들을 선정하는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