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 배우들이 만드는 급진적인 ‘햄릿’

입력 2025-05-20 10:32
페루 극단 테아트로 라 플라사의 ‘햄릿’ 공연 사진. (c)Aurora Nova

지난해 8월 영국 에든버러 국제 공연예술 페스티벌의 화제작 가운데 하나는 페루 극단 ‘테아트로 라 플라사’의 ‘햄릿’이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햄릿’은 영국 관객과 평단에게 친숙한 작품이지만 테아트로 라 플라사의 공연은 형식과 주제 면에서 새롭고 특별했다. 8명의 다운증후군 배우가 무대에 올라 ‘햄릿’을 자유롭게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작품 안에 개인의 욕망과 좌절을 투영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영화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 역으로 알려진 영국의 대배우 이안 맥켈런이 스크린을 통해 카메오 출연한 것도 당시 관객에게 놀라움을 줬다.

테아트로 라 플라사의 ‘햄릿’이 오는 23~25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모두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은 페루 연출가 첼라 데 페라리가 극장에서 안내원으로 일하던 다운증후군 하이메 크루스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크루스가 살아가는 현실을 보고 자신의 무지와 편견을 깨달은 페라리는 사회에서 완전한 인정을 받기 어려운 이들에게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묻기 위해 이 작품을 기획하게 됐다. 1년이 넘는 개발과 연습을 통해 다운증후군 배우들은 ‘햄릿’을 자신만의 경험과 목소리로 재해석한다. 각 배우는 햄릿을 비롯해 극 중 다양한 인물이 되면서 역할을 연기하는 실제 인물로 존재한다.

테아트로 라 플라사는 2003년 페루 리마에 설립된 극단으로, 동시대 사회를 반영하는 창작극과 고전을 재해석한 연극을 선보이고 있다. 연출가 페라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적 배경의 배우들과 협업하며 연극을 통한 사회 변화와 포용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공연뿐만 아니라 워크숍, 연구, 영상 제작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남미 현대 연극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번 내한에서도 오는 26일 다운증후군 등 신경다양성을 가진 당사자를 대상으로 연기 워크숍을 진행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