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 있는 과학기지, 이어도2호… 언론 최초 탑승해보니

입력 2025-05-19 16:44 수정 2025-05-20 12:00
시험 운항 중인 이어도2호. 해양과학 조사 장비 성능 점검을 위해 경남 남해안 일대를 항해하고 있다.

“예전에는 장비를 내리면 2~3㎞는 떠밀려 갔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고정이 안 되니까, 파도에 떠밀리며 샘플을 채취할 수밖에 없었죠. 지금은 30㎝ 이내 정밀도로 정지할 수 있습니다. 이 배는 그냥 배가 아닙니다. 떠 있는 연구소예요.”

18일 오후 4시 경남 거제시 아시아조선소. 작업복을 입은 조선 기술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이곳에 유난히 눈에 띄는 선박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초록색 갑판과 하얀 선체가 대비를 이루는 732t급 신형 연구선 ‘이어도2호’. 국민일보 취재진은 언론 최초로 이 배에 올랐다.

초록색 갑판 위에 하얀 선체를 얹은 이어도2호는 일반 선박과는 다른 인상을 풍긴다. 측면에는 KIOST 로고가 선명히 새겨져 있고, 넓은 갑판 곳곳에 관측 장비 설치를 위한 구조물이 드러나 있다. 상단의 브리지는 사방을 조망할 수 있도록 개방형 구조로 설계됐으며, 정밀 탐사용 안테나와 위성통신 장비도 함께 설치돼 있다.

배에 오른 첫인상은 단단했다. 육중한 철판으로 둘러싸인 이 배는 20일간 바다 위를 떠다니며 과학자 17명과 선원 15명이 생활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바닷속 지형을 관측하고, 기후변화의 징후를 포착하며 해류의 흐름을 추적하는 임무를 맡는다.

무엇보다 이 배의 ‘두뇌’는 조타실에 있었다. 전방위 회전이 가능한 아지무스 스러스터, 자동위치제어 시스템(DP), 전기 추진 시스템이 연결돼 버튼 하나로 선체의 방향과 정지를 조정할 수 있다. 실제 조타실에 기자를 안내한 진성일 이어도2호 선장은 키를 쥐며 말했다.

360도 회전이 가능한 아지무스 스러스터와 자동위치제어 시스템(DP)을 갖춘 이어도2호의 조타실에서, 진성일 선장이 항해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해류가 아무리 세게 흘러도, 이 배는 30㎝ 오차 이내에서 정지할 수 있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ROV(무인 잠수정)를 내리거나 해저 시료를 채취할 때, 이 정밀함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요.”

진 선장은 이어 “360도 회전도 가능하니 방향 전환도 자유롭고, 전기 추진이라 친환경성도 갖췄죠. 연구자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라고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도2호 조타실 내부. 수심과 해저 지형을 탐색하는 각종 항해 장비가 설치돼 있으며, 선체 전후좌우를 살필 수 있는 넓은 창과 조타석이 눈에 띈다.

실제로 배 안은 말 그대로 바다 위의 연구소다. 전자해도가 깔린 항해 시스템, 수온과 염도를 분석하는 센서, 천해·심해용 멀티빔 측심기, 음향 유속계(ADCP), 해상중력계, 초단거리 수중 위치 시스템(USBL), 극저온 냉동고까지 없는 게 없다. 장비 수는 퇴역한 이어도호의 20종에서 34종으로 늘었다.

건식·습식연구실뿐 아니라 위성 TV와 인터넷을 갖춘 승무원 숙소도 인상적이다. KIOST는 향후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을 도입해 먼바다에서도 실시간 통신과 데이터 전송이 가능하도록 준비 중이다. 조리실도 웬만한 식당 수준이다. 갑판은 전후좌우 4면이 열려 있어 ROV나 샘플 채집 장비를 내리기에 최적화돼 있다.

이어도2호 연구실 한쪽 벽면을 따라 모니터가 여러대 설치돼 있다. 실시간 항해 정보부터 해저 지형, 기상, 수심 데이터까지 모든 정보가 이곳에서 통합 관리된다.

이 배를 만든 주역들도 이어도2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박동원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종합연구선건조사업단 감독관은 “이어도2호는 단순한 선박이 아니라, 정밀 과학장비의 집합체”라며 “선체 하부에 설치된 ‘센서 돔’은 수중 음파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차례 모형 실험을 거쳐 설계됐습니다. 물방울 하나조차 신호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만든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도2호의 동선 설계에 참여한 이근창 감독관은 연구자 출신으로, 배의 구획과 장비 배치를 모두 실제 연구 흐름에 맞춰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책상 위치 하나에도 이유가 있다’는 마음으로 설계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모니터 수십 대가 일렬로 배치된 이어도2호의 기관제어실. 엔진 출력부터 전기 설비, 추진 방향까지 선박의 모든 주요 시스템이 이곳에서 관리된다.

정섬규 책임연구원은 “정밀한 데이터 수집이 가능해진 데다, 우리 해역에 최적화된 장비들이 들어와서 앞으로 훨씬 나은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실제 이어도2호의 임무 구역은 독도 인근을 비롯해 최근 중국이 고정 구조물을 설치한 서해 잠정조치수역(PMZ) 등 민감 수역까지 포함된다. 해양 주권 수호와 기후 위기 대응, 심해 연구까지 국가 과학이 닿아야 할 곳이라면 어디든 향하게 된다.

이어도2호 내부 기관실. 친환경 전기 추진을 위한 발전기, 엔진, 배관 시스템이 조밀하게 구성돼 있다.

이희승 KIOST 원장은 “이어도2호는 과학기술로 우리 해양영토를 지키는 첨병이자, 앞으로 20년 이상 바다를 누비며 기후와 해양을 예측하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바다를 기록하고, 해석하고, 지키는 움직이는 과학기지. ‘이어도2호’는 오는 20일 KIOST 남해연구소에서 취항식을 열고 본격 임무에 돌입한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