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장제스 지우기’…대만, 전국 300여곳 ‘중정로’ 명칭 바꾼다

입력 2025-05-19 15:05
대만 타이베이 중정기념당의 장제스 동상. 바이두

대만 정부가 올해로 사망 50주년을 맞는 장제스 전 대만 총통의 흔적 지우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만 집권 민진당은 장제스를 독재자로 규정하고 개인숭배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일 대만 언론 타이바오 등에 따르면 대만 내정부는 장제스의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조각상, 초상화, 공간 명칭 등으로 941개를 등록해 이 중 264개에 대해 ‘탈장화’(장제스 지우기)를 완료했다고 18일 밝혔다. 나머지 677개에 대해선 매월 처리 결과를 공개하기로 했다.

내정부는 권위주의 상징물의 폐기를 희망하는 기관이나 학교가 자금이 부족한 경우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올해 36건의 보조금 신청이 접수돼 16건은 지급을 완료했고 20건은 지급이 승인됐다고 전했다.

전국 각지에 있는 ‘중정로’(中正路)의 명칭 변경에 대해선 연구를 의뢰하고 처리 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중정’은 장제스의 본명으로 이를 딴 거리가 전국에 300여곳 있다. 장제스의 장수를 바란다는 의미인 ‘개수’(介壽)라는 이름의 도로도 26곳 있다.

내정부는 도로 명칭 변경은 지방정부의 권한이고 호구 등록, 개인정보, 생활습관 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중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1야당인 국민당 소속 장스강 타이베이 시의원은 “도로명이 바뀌면 호적과 주소도 바꿔야 한다”면서 “잠깐은 이념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후 모든 부담을 국민이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대만 국방부는 지난달 장제스와 아들 장징궈 전 총통의 묘역 명칭도 왕족의 무덤을 일컫는 ‘능침’(陵寢)에서 군사기지를 뜻하는 ‘영구’(營區)로 격하했다. 민진당 추치웨이 의원은 “군대의 임무는 독재자의 무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며 이들의 묘역을 지키는 의장대를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리슝 국방부장(장관)은 “장제스의 유해를 우지산 군사묘지로 이장하는 방안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대만 정부는 지난해 5월 14일 타이베이의 중정기념당 내 장제스 동상 앞에서 44년간 진행한 대만군 의장대 교대식도 종료했다. 1980년 개관한 이곳에선 높이 6.3m의 대형 장제스 동상 앞에서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정각마다 의장대 교대식을 열었다. 대만 문화부는 당시 “개인숭배 철폐와 권위주의 숭배 종식을 위해 의장대 교대식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장제스는 국공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건너온 뒤 1975년 87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총통을 맡았다. 집권 기간 대만을 계엄 상태에서 통치하며 반대파를 억압하고 민주화운동을 탄압했다. 사후에는 아들 장징궈가 총통이 돼 1978~1988년 대만을 통치했고 1987년 7월 계엄령을 해제했다.

현 집권여당인 민진당 출신의 첫 총통인 천수이볜은 장제스를 독재자·학살자로 규정하고 2006년 중정국제공항을 타오위안국제공항으로 바꿨다. 2007년에는 중정기념당의 이름도 대만민주기념관으로 바꿨지만, 장제스를 추종하는 국민당이 재집권한 후인 2009년 원래 이름으로 돌아왔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