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호 목사·보길도 동광교회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낙도에서 전도하면서 사도행전 말씀이 늘 연관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하에 인정받지 못하던 사울을 바울로 바꾸어 주신 놀라운 사랑과 큰 능력을, 이곳 섬에서 살아온 연약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하십니다. 섬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변화가 되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복음의 능력은 놀랍기만 합니다.
어부들과 노인, 젊은이, 때로는 술주정뱅이에, 노름꾼 소리를 듣는 사람들, 심지어 섬의 술집에서 일하던 직업여성들까지 모두 갈릴리 근처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저는 그분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조금 쉽게 마음이 열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큰 인내심이 요구됩니다. 시간과 물질도 그만큼 많이 사용했지만 그들이 처한 환경 속에 뛰어들어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기도 하고 혹 제가 가진 지식이 조금이나마 그들보다 많다면, 기꺼이 나누며 손을 잡아서 구원이 있는 주님의 방향으로 잡아당겼습니다.
지금 뒤돌아보면 그런 전도가 이루어지려면 많은 도구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 힘이 약하고 부족할 때 하나님께서 그런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려고 복지과 공무원, 인근 병원 의사 선생님, 마을 보건소장님들을 붙여주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였습니다.
그런 고마운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루에도 여러 번 고맙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도구가 있습니다. 바로 제가 아끼는, 거의 20만㎞나 뛴 1t 트럭입니다. 트럭은 언제나 저의 섬 목회를 감당하게 하는 공신입니다. 트럭은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를 일들이 하루에도 여러 번 생기는 데도 아무 말 없이 순종합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도 저 트럭처럼 하나님이 시키면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데….’ 하지만 저는 순종보다는 힘들다는 이유를 먼저 내세웠던 것 같습니다. 반면 미련한 저 트럭은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저를 지탱해주면서 함께 달려줬습니다. 트럭이 교인들 못지않게 고맙기만 합니다.
솔직히 섬 목회 현장에서 트럭이 없으면 핸드폰이 없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어부들의 그물도, 잡은 고기도, 선박에 사용할 디젤 드럼통을 10개씩 실어 나르고 이웃들이 필요한 건축 자재라든가, 혼자 사시는 어른들을 위해 5t짜리 물탱크도 수십 개씩 실어 날라 설치를 완료했습니다.
아마 사람이라면 벌써 힘들다고 내팽개치고 도망갔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 트럭은 어떤 불만도 내지 않고 함께 전도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과거 80년대에 교회 봉고차가 유행할 때 ‘봉고차 한 대가 전도사 역할을 한다’며 농담 섞인 말들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고마운 트럭에다가 제게는 또 다른 고마운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주일날 섬 속의 섬인 노록도에 가도록 우리를 태우고 가는 소형 선박 ‘동광호’입니다. 동광호는 겉은 허름해도 전도와 영혼 구원에 불타오르는 전도 대원을 싣고 파도를 헤치며 달려갑니다. 트럭이 오른손이라면 동광호는 저의 왼손 역할을 훌륭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모르는 영혼들을 깨우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도움도 절실하지만 말없이 그 역할을 담당해 주는 트럭과 배 덕분에 더욱 소중하게 관리를 합니다. 이 탈것들은 모두 주님의 전도사역에 꼭 필요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조선 말 선교사님들은 말을 타고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선교사님들은 그들이 타고 다니는 말을 얼마나 아끼고 소중하게 여겼을까요. 아마도 잘 먹이고 아프면 치료해 주면서 끝까지 고맙게 여겼을 겁니다. 소유물이 아니라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귀한 생명으로 말이지요.
자동차와 배가 소중한 것처럼 제가 전도사역에 귀하게 사용되는 공구들도 있습니다. 엔진 톱, 그라인더, 용접기 등입니다. 이미 손에 익은 공구가 100여 가지가 됩니다. 이 공구들을 사용할 때마다 비록 물건이지만 한편으로는 전도하는 일에 사용되는 복덩이로 여겨집니다.
노인 성도님이나 젊은 성도님도 은혜를 받고 구원의 확신이 들면 한결같이 전도에 나섭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전도하는 성도님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또한 나와 같이 전도에 사용되는 도구들도 같은 마음이기에 주위를 살펴보면 온통 고마운 사람과 고마운 물건들뿐입니다.
고맙고 이쁘고 멋있고 재미있고 행복이 넘실대는 여기가 바로 낙도입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