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하기’ 어려운 시대… 내가 주일학교 교사로 사는 이유

입력 2025-05-18 17:29

학생 수는 줄어들고 교사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선생하기’ 어려운 시대라고들 한다. 좋은 선생님을 꿈꾸는 사람도 함께 줄어 간다. 교회 안 사정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

어린이부터 청년까지 다음세대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교회 주일학교도 축소되고 있다. 어린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 이상으로 주일학교 교사 구하기는 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수십년째 사랑과 기도로 아이들 곁을 지켜온 선생님들이 있다.

아이들 영혼을 품고 말씀과 기도로 신앙의 길을 세워 온 주일학교 교사들은 “아이들을 섬기는 게 사명이고 큰 기쁨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오늘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선생님들과 그들 덕에 ‘하나님 손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제자들의 고백은 여전히 희망이 된다.

34년째 아동부 사랑… “내 소명이자 은혜”

임채란 권사가 경기도 성남 동문교회 아동부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말씀 암송을 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 동문교회(장천재 목사) 임채란(64) 권사는 34년째 교회에서 아동부 교사로 섬기고 있다. 과거 서울에 있던 상가교회가 1997년 현재 위치에 있는 교회로 합병·이전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임 권사는 줄곧 아이들의 선생님이었다.

아동부 학생들이 커서 중·고등부에 올라가고 청년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들이 자라 또 교회학교 일원이 됐다. A씨(43)도 임 권사가 그 세월을 모두 지켜본 ‘아이’다.

“권사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아동부 선생님이에요. 권사님표 떡볶이는 우리교회 주일학교 달란트 시장의 트레이드마크였는데, 제 아들이 아동부에 가서도 그 떡볶이를 좋아했어요. 선생님이 다시 제 아이의 선생님이 되신 거죠.”

경기도 성남 동문교회 임채란 권사

A씨가 아동부 교사를 했던 대학생 시절, 임 권사는 선생님에서 선배가 됐다. A씨는 “그 시절 권사님은 좋은 교사 선배이자 신앙 선배였다”고 고백했다.

“대학생이 되니 여러 일로 바빠지고 자연스레 교사 일이 점점 버거웠어요. 세상일과 교회 활동 사이 내적 갈등이 커지고 힘들어졌죠. 고민을 털어놓자 권사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너무 많은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손만 먼저 놓지 마. 그거면 돼.’ 그 한마디가 지금까지 마음에 남아서 많은 순간 제게 위로와 힘이 됐어요.”

긴 세월 한 자리를 지켜 온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지난 1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젊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아동부 섬기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아가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며 15여년 전 잠시 중고등부 교사를 맡아야 해 아동부를 떠났던 때를 떠올렸다.

그는 “교회에서 아동부 아이들을 마주치면 눈물이 날 정도로 아동부가 그립더라”며 “돌아보니 아동부가 내 소명이고 은혜였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춘기 제자들을 향한 ‘짝사랑’ 30년

박찬호(오른쪽) 집사가 지난해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30년 근속교사상을 받은 뒤 제자 강혜경 전도사와 찍은 기념사진.

“박찬호 선생님은 제 신앙의 방향을 잡아주신 분이에요. 선생님을 통해 금식기도를 배우고 방언도 받았습니다. 지금도 인생의 중요한 고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찾는 분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직할성전 유치부의 강혜경(42) 전도사는 30여년 전 중등부에서 만난 선생님을 이렇게 추억했다.

그런 강 전도사는 선생님 박찬호(58) 집사에게 여전히 제자였다. 지난 11일 서울 잠실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 집사는 “어릴 적부터 믿음이 깊고 당찼던 아이가 이제는 사역자가 돼 다음세대를 이끌고 있는 걸 보니 교사로서의 시간이 의미 있었구나 싶다”고 말했다.

박 집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30년째 중3 학생들을 섬기고 있다. 취업준비생 시절 “직장은 하나님이 예비하실 테니 봉사부터 하라”는 전도사님의 권면에 따라 중등부 보조교사로 들어간 것이 시작이었다. 주중에는 고등학교 물리 교사, 주일엔 주일학교 교사로 30년 경력을 쌓은 박 집사지만 “지금도 사춘기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전하고 더 잘 소통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고 했다.


“30년이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다”는 그는 매주 주일 아침 7시 30분 교사 기도회로 하루를 시작해 대예배, 학생예배, 오후 교사 기도회까지 빠짐없이 섬겨왔다. 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교사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주일의 모든 시간을 묵묵히 교사로 지켜온 것이다.

박찬호 교사(두번째줄 왼쪽 첫 번째)가 1994년 여의도순복음교회학교 제32회 중등부 졸업기념식에서 학생들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

“94년만 해도 중3 학생이 1000명, 교사는 100명도 넘었어요. 지금은 학생 수가 160명대로 줄고, 대면을 부담스러워 하는 아이들이라 심방도 조심스럽죠. 전화나 카톡 답도 잘 없는 사춘기 아이들이 공감표시 하트 하나만 찍어도 ‘마음이 열린 걸까’ 기대하는 게 교사들이죠.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어요. 마음을 쉽게 열지도 표현도 안하는 아이들이지만 교사들은 우리의 사랑이, 진심이 통한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먼저 다가갑니다.”

박 집사는 지금도 여전히 ‘사춘기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잘 소통하고 친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끝이 없다고 했다.

그는 “주일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등에 손을 얹고 조용히 기도한다. 기도가 깊이 흘러가는 아이도 있지만, 때로는 마치 닫힌 벽 앞에서 기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 하나님이 제게 말씀하셨어요. ‘네가 이 아이를 믿지 않고 있잖아.’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후로는 지금 당장 변화가 없어도,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바뀔 거라는 믿음으로 기도하게 됐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학생들뿐 아니라 교사인 저도 변화시키셨고 제 믿음 또한 자라게 하셨습니다.”

교사로서 보람된 순간은 “아이들의 믿음이 자라는 모습을 볼 때”다. 박 집사는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였던 아이가 어느 날 달라진 눈빛으로 철야예배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게 될 때, 아이 한 명의 신앙이 자라기까지 많은 기도와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교사의 작은 헌신도 믿음의 흔적으로 남는다는 걸 직접 경험하게 됐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봉사의 자리, 교사로 힘든 순간은 언제였을까. 박 집사는 “아이들이 교회를 잘 안 나오고 다른 반은 부흥하는데 내 반만 정체돼 있다고 느낄 때 교사들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코로나 이후 대면예배가 회복됐지만, 저희 반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예배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참 힘들었어요. ‘내가 교사로서 부족한가?’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그 시간마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훈련이라 믿고, 다른 반 아이들 간식 준비와 같은 작은 일부터 묵묵히 맡은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박찬호 선생님

한국 교회학교가 위기라고 말하고, 교사 수급마저 어려운 이 시대에 박 집사는 “다음세대를 세우기 위해 헌신하는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랑과 수고로 지금의 교회학교가 지켜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나는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교사들이 한국교회에 더욱 많아지길 바랍니다. 함께 그 꿈을 품고 동행하는 교사들이 되어, 믿음의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워가면 좋겠습니다. 젊은 선생님들의 많은 참여도 기대합니다.”

30년 전 가르쳤던 중학생 제자들이 어느덧 40대 중년이 됐다. 자녀와 함께 교회에 나오는 학부모가 되기도 하고 자신과 함께 교사로 섬기고 있는 이들도 있다. 그중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목회자와 전도사가 된 제자들도 있다.

그는 “아이였던 그들이 이제는 믿음의 동역자로 서 있는 모습을 보며, 가르침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면서 “그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자리에 부르신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얘들아, 잘 지내지? 다들 참 보고 싶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믿음 잃지 않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고 있기를 바란다. 선생님은 여전히 너희가 함께했던 그 자리에서 교사로 섬기고 있어. 언제든 마음이 닿을 때 찾아오렴. 시간 나면 언제든 놀러 와. 너희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 변함없단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영아부 은사에서 찾은 사명

화평교회 이광희 집사가 화평교회 영아부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선생님,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대요.”

화평교회(김정민 목사) 이광희(64) 집사는 아이들이 작은 입술로 전하는 순수한 신앙고백에 이끌려 20년 넘게 영아부(0~4세) 교사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이 집사가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된 건 결혼 후였다. 그는 “입덧이 너무 심해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엄마를 따라 나온 교회 식당 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면서 “그 인연으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자훈련 중 담임 목사님으로부터 ‘은사에는 사명이 있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영아부 아이들을 품어주는 일이 저의 사명이라 여겨졌죠.”

화평교회 이광희 집사가 2023년 7월 영아부실에서 헌금안내위원으로 봉사하는 아이들을 돕고 있다.

영아부는 특히 섬세한 돌봄이 요구되는 부서다.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1:1 돌봄이 필요한 만큼, 교사들의 섬김과 헌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후 8~9개월 무렵의 아이들은 아직 엄마의 품을 완전히 떠나기 어려워,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며 얼굴이 익숙해지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선생님 품에 안기기 시작한다.

그는 “영아부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아주는 작은 순간들이 모여 관계가 쌓이는 곳”이라며 “그만큼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더 깊이 마음을 쏟게 되고 책임감도 커진다”고 말했다. 지금도 이 집사는 교사들과 함께 매주 30여 명의 영아들과 예배드리며, 아이들의 첫 신앙 여정을 정성껏 이끌고 있다.

박 집사는 “무엇보다 이 시기에 형성된 신앙 습관이 평생을 좌우하기에,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교사 사역에 임하게 된다”고 말했다.

말이 서툰 아이들은 반복되는 찬양과 율동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을 익혀간다. 이 집사는 “어린 시절의 예배 경험이 평생 신앙의 기초가 된다”면서 “유치부로 올라간 아이들이 예배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하나님이 이미 그들 안에 일하고 계심을 느낀다”고 했다.

이 집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로 지금은 군 입대를 앞둔 ‘정호’를 떠올렸다. 정호는 영아부 시절 “선생님 제가 커서 꽃반지 사줄게요”라며 웃던 제자로, 믿음 안에서 잘 자라 교사로서 큰 보람을 주었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먼저 다가와 인사해줄 때면, 그 순간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몰라요. 교사로서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작은 순간이 큰 감동으로 남습니다.”

화평교회 이광희 집사가 화평교회 영아부를 함께 섬기고 있는 교사 선생님과 같이 찍은 단체사진.

이제는 나이가 들어 ‘이제는 교사의 자리를 내려놓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도 생긴다는 그는, 주일학교 교사를 망설이는 이들에게 이렇게 전한다.

“아이 한 명의 신앙이 자라기까지는 수많은 기도와 기다림, 그리고 보이지 않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주일학교 교사는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아이들의 평생 믿음을 세우는 거룩한 사명입니다. 영아부에 오는 모든 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나길, 그리고 이 사명을 함께 감당할 믿음의 동역자들이 계속해서 세워지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40년 교사생활, 참 행복했습니다

안순자 권사가 지난해 12월 대구 대일교회에서 열린 교사 은퇴식에서 제자인 현직 전도사와 작별 인사를 나누는 모습

대구 대일교회(오세경 목사)의 안순자(66) 권사는 홀로 믿음 생활을 하거나 가정이 온전치 못한 아이들에게 반찬을 해주고 꼭 안아주는 ‘교회 엄마’였다. 그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주일학교 교사가 삶 속 일순위였다”고 고백했다.

그런 그에게 3년 전 이 교회 초등부 전도사에 과거 초등부 제자였던 구하은(29) 전도사가 부임해 온 건 선물 같은 일이었다. 안 권사는 “‘수고했다’며 하나님이 큰 열매로 축복을 주신 기분이었다”고 떠올렸다. 구 전도사 역시 안 권사 모습이 ‘서프라이즈’였다. 구 전도사는 “제 선생님이 여전히 열정적으로 교사를 하시는 모습에 놀랐다. 아이들에게 ‘전도사님의 선생님이셨어’라고 늘 말할 정도로 든든하고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대구 대일교회 안순자 권사

안 권사는 지난해 12월, 40년 넘게 이어온 주일학교 교사직을 내려놓았다. 이후 한동안 교회에 가면 마음이 저려 아이들 예배실 쪽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수많은 주일학교 교사들을 향해 하나님이 함께하시길 기도한다며 말했다.

“대학 졸업 후 24살부터 주일학교 교사로 살며 참 행복했습니다. 귀하고 예쁜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 자체가 은혜였죠. 맡겨진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매일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부어주실 거예요. 제게 그러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