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전도자라 부르는 한 젊은 한국 남성이 마치 귀신에 씐 것처럼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는 외국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성령의 불 너의 온몸에 임할지어다! 사탄아, 나가라!”라고 몇 번 외쳤다. 그러자 그 외국인은 마치 귀신이 빠져나간 듯 이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 외국인은 이후 가진 인터뷰 자리에 멀쩡한 모습으로 나와 “귀신이 몸에서 나가며 내면의 평강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귀신을 쫓아내는 의식을 벌인 이 젊은 한국 남성이 올린 유튜브 영상 속 한 장면이다. 그가 개설한 유튜브 채널에는 직접 병을 고치는 집회 영상부터 다가올 한국 대선을 예언한다는 내용의 영상 등이 수십 개 올라와 있었다. 대부분 과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내용임에도 그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20만 명이 넘었다.
한국기독교이단연구학회(회장 유영권 박사)가 17일 경기도 수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안상혁 총장)에서 제3회 정기학술대회를 열고, 이처럼 교회 안팎에서 논란을 빚는 ‘신비주의’ 문제를 살폈다.
학회 발제자로 나선 이들은 성경에도 기록된 치유나 축사(逐邪) 사역을 주로 내세우는 신비주의의 문제점을 짚으며, 신자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신앙관을 안내했다.
유영권 박사는 주제 발표자로 나서 “신비주의에 의한 적지 않은 피해에 대해 교회의 공동인식이 있어야 하지만, 교회 구성원이 적지 않은 수가 신비주의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기독교적이라고 받아들이는 정서를 지니고 있다”고 현실을 진단했다.
첫 발제자로 나선 김성욱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교수는 “역사를 돌아보면 창세 이래 사람들을 가장 많이 미혹해 온 것은 기적과 신비로운 현상이었다”며 “예수님이 성경에서 말한 교훈의 핵심은 거짓 선지자들이 아무리 신비로운 사건과 놀라운 능력을 보이고, 많은 이들이 그들을 따르더라도 절대로 거짓 선지자들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신비주의 흐름은 20세기부터 본격화했으며, 21세기 접어들어 성경에 반하는 신비주의를 내세운 이단들이 많이 등장했다.
고려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역사신학을 전공한 이재욱 박사는 이어진 발제에서 “시대마다 등장한 신비주의는 개인의 직접 체험과 내적 계시를 절대화하고, 성경의 권위를 상대화한다”며 “나아가 기존교회 질서와의 단절을 초래해 교회의 일치성을 파괴하고 분파주의를 형성한다”고 지적했다.
학회 발제자들은 한목소리로 신비로운 체험에만 매몰되는 일을 경계하고, 신비로운 현상을 성경적으로 바르게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박사는 먼저 신비주의의 유익한 측면과 해로운 측면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유익한 측면에 대해서는 ‘신비’로, 해로운 측면이 있는 건 ‘신비주의’로 구분하자고 제안했다. 유 박사는 “유익한 신비는 신비로운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통로가 되고, 해로운 신비주의는 신비 자체가 신앙의 중심과 본질이 된다”고 부연했다.
유 목사는 또 환경의 어려움을 신에 의존해 해결하려는 종교성을 극복하고, 자신이 맞닥뜨린 현실 문제 해결에만 신앙의 목적을 둔 ‘기복신앙’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했다. 이외에도 종말론의 올바른 이해를 도울 요한계시록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제대로 교육해 성도들이 하나님의 계시와 성경 말씀 본질을 올바르게 해석해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성도들이 성경이 아닌 신비주의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 곧 성도들을 성경으로 바로 길러내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개인이나 단체가 경험하는 신비로운 체험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경험으로서 신앙과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도 “신비로운 체험이 신앙의 중심이 돼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신비주의 운동은 성경적 관점에서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특히 “교회 내 신비주의 운동을 막는 길은 성경을 바르게 배우며 기독교의 진리를 기초부터 배워나가는 신앙고백을 공부하는 것이다”며 “자신이 경험한 신비로운 체험을 성경 보다 앞세우지 말고 성경적 타당성을 먼저 점검하는 절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신비적 요소는 인정하되, 그것이 성경의 권위와 교회의 공동체성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며 “개인적 영적 체험과 객관적 계시, 주관적 신앙과 공동체적 분별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한 기독교 영성의 핵심이다”고 말했다.
수원=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